▲ 흔히들 인생이 짧다고 탄식들을 한다.
인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위인들 가운데는 餘恨없이 삶을 마친 사람은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을 마무리 하는 단계에서 못다한 일에 대한 미련 때문에 짧은 삶을 더욱 원망하게 된다. 인류 최대 · 최후의 고통으로 일컬어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또한 우리의 삶을 더욱 짧게 느끼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오늘날 각 매스콤의 건강 상담이 크게 인기를 모으고 각종 건강식 또는 자연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짧은 삶을 하루라도 더 연장 시켜 보려는 본능적 욕구의 결과이다. 三千甲子 東方朔의 신화를 동경하며 長壽를 열망하는 인간의 욕구는 건강을 지키기 위해 쏟아야 하는 엄청난 노력까지도 불평없이 참게 한다. 쓰디쓴 약을 먹고 체력 단련을 위해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오히려 즐거움을 느끼기 까지한다 ▲ 이처럼 有限한 인간의 삶을 1秒라도 더 연장하려는 노력에 비춰 볼때 인간의 생명을 나눈다는 것은 상상하기 조차 힘든 일이다.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나누는 일, 그것은 곧 죽음을 뜻한다.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자신의 모든것을 바치는 이 성스런 행위야 말로 사랑의 극치요, 희생의 절정인 것이다. 지난 10일 성인의 반열에 오른 꼴베 신부의 극적인 죽음이 온 인류에게 뜨거운 감명을 주는 것도 그 분이 보여준 완전한 희생과 사랑의 나눔 때문이다. ▲ 동료 죄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 꼴베 성인의 당시 건강 상태는 극히 나빴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한 상황속에서도 그는 다른 수인들이 차례로 숨져 가는 것을 지켜보며 끝까지 버텨 낼 수 있었다. 죽음에의 공포앞에 몸부림치는 무고한 넋들을 선종케 해야겠다는 그의 마지막 결의를 여기서는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이미 죽음의심을 자원한 그가 스스로 택한 또하나의 십자가로 볼 수도 있다. ▲ 인생이 짧다고 푸념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 짧은 삶을 참되게 살려고 노력하는 이는 드문것 같다. 언젠가는 우리의 삶에 종지부가 찍혀진다는 입장에서 볼 때 우리 모두는 죽음의 감방에 수용된「아우슈비치」의 수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보여준 처절한 기도와 뜨거운 회개 그리고 완전한 의탁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 무서운 교훈을 던져준다. 꼴베 신부의 시성은 벗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일은 차지하고 라고 자신이 가진바를 조금이나마 나누는 일에 까지 인색한 우리의 자세를 반성케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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