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석바위라는 곳에서 한 시간 마다 오는 버스를 타고 30여 분을 달리면「고잔」이라는 마을이 있다. 아늑하고 무언가 포근함을 주는 마을이다.
그것도 그거지만 구월동 아파트를 지나 이 곳까지 펼쳐지는 풍경이란 고향을 연상하는 만큼 아름답기 그지없다.
내가 이곳 고잔과 인연이 되어 알게 된 것은 평소 잘 아는 신부님께서 이 곳으로 부임하고서 부터였다.
야트막한 언덕 위, 느티나무에 둘러싸인 성당은 어느 외국엽서에서나 느낄수 있을 만큼의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그런가 하면 신부님이 직접 거름을 주고 키우는 성당 뒷뜰의 복숭아는 봄이 되기 무섭게 그 빛이 아름답다
이 곳의 본당 신부님 또한 이 마을의 분위기와 함께 조용하고 자상하고 항상 흰 고무신에 청바지를 즐겨 입으시는 분이다.
신부님은 돈이 없어 학교를 못다니는 아이들(?)을 늘 걱정하시며 살았다. 어쩌다 만나 소주잔이라도 기울일라 치면 우선 걱정이 야학을 꾸미자는 말씀이 앞섰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다.
신부님 한테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구선생님 야학을 열게 됐어요』
신부님의 전화 목소리는 차분하셨지만 그 속으로 흔들리는 기쁨이 내게까지 낳는 느낌이었다.
『그래요! 그럼 저도 시켜주세요』
그 야학에 나도 한번 끼어 신부님을 돕고 싶어서 였다.
평생을 하느님 대리자로 사시는 신부님, 자신보다 이웃을 위해 가난과 살벌로 찌들은 이들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어하시는 신부님-.
이렇게 해서 난 매주 월요일 국어를 이 곳 야학에서 가르치게 되었다.
생각보다는 좀 어려웠다. 하루 종일 학교 아이들과 시달리고(?)그리고 퇴근종이 치기 무섭게 저녁도 잊고 달려가야 한다.
주님의 뜻으로 이루어진 이 봉사의 기회, 나를 비롯한 7명의 선생님은 내일 처럼 열심히 뛰셨다. 50대 할머니에서 부터 20대 처녀에 이르기 까지 모인 학생들의 주경야독의 열성은 불이 붙기 시작했다. 물론 더위도 추위도 잊은채 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시작할 때 30여 명이나 넘었던 학생들이 하나 둘 결석을 시작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려 했고 무언가 한 글자라도 배우고 싶어하던 학생들이 아니었던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그비를 다 맞아가면서 배워야 하겠다며 열성을 부렸던 아이들(?)-.
그러던 11월,
신부님과 선생님들의 끈질긴 노력과 열성에도 불구하고 고잔 성당 이 학교실엔 결국 불이 꺼지고 말았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날 따라 쌀쌀했던 초 겨울 날씨가 더욱 몸을 흔들었다. 신부님과 선생님들은 섭섭한 뜻을 기리기(?)위해 몇 잔의 소주를 마셨다.
별이 하도 총총하고 맑아 쳐다 볼 때마다 오장이 후련했던 고잔의 밤하늘이었건만 그 날 따라 고잔의 하늘은 그렇게 답답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성당 뒤쪽 바닷가에서 학생들의 노래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았다.
신부님의 눈엔 신부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의 눈에도 어느새….
고잔, 그리고 신부님과 야학, 지금도 난 그 때를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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