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그마한 여학교의 서무과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 봄 고3의 J라는 아이에 대해 얘기 들었을 때는 정말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J는 얼마 전에 어머니마저 병석에 눕고 말았다. 어머니는 거동도 할 수 없는 중병이라고 했다. J는 학교 등록금은 커녕 살아 갈 길이 막막한 처지에 놓였다. 중 3의 동생까지 학교 협동 조합에서 일하여 학비를 보태야 했고 가난은 점점 심각하게 조여왔다.
이즈음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고마운 분들이 J의 밀린 등록금을 내어 주시고 또 그 집을 방문하여 어머니께 위로의 말씀과 함께 쌀까지 사 주고 가셨다. 나중에 알아 보니 이 학교에서 가까운 이태원 본당의 빈첸시오회 어머니들이라 했다.
물론 J는 교우가 아니다. 더우기 이 학교는 개신교에서 경영하는 학교 이고 보면 이 분들의 사랑은 본당을 초월하고 교파를 초월하는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요즈음 이 삭막하고 죄많은 사회에서 이러한 숨은 사랑은 범람하는 죄악들을 삭여주고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을 알게 모르게 저지를 때 이런 분들은 가슴 아파하여 기도하고 대신 희생과 봉사를 바친다.
우리 사회와 민족이 이 만큼이라도 살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고 봉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생떽쥐베리의「어린왕자」中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 사막의 어딘가에 우물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막에서의 우물의 역할을 해야한다. 얼마전「팔레스티나」의 대량학살은 정말 통란할 일이다.
그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어쩌면 많은 우리 자신들의 죄값을 그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지도 모를일이다. 내가 가짐으로써 다른 이가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우리는 무엇이던 나누지 않을 수 없다.
맑고 푸른 가을 하늘에서 주님의 얼굴을 뵌다. 그 분은 우리가 회개하고 당신과 화해 하기를 바라고 계신다.
그래서 잃었던 양이 돌아 오듯 냉담했던 사람들도 돌아 오고 열심한 사람은 더욱 분발해서 우리 하나 하나가 모두 숨은 봉사자가 되자. 그리하여 우리교회가 선교 2백주년을 맞이 하는 1984년에는 스스로 자란 우리의 신앙을 그리스도인의 드높은 향기로 가득 채운 한반도의 모습을 오실 교황님게 보여 드리자. 그 때에 주님께서는 여의도의 동편 하늘이 아닌 절두산 아래 흐르는 한강물에라도 큰 십자가를 그려 주실런지…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없이 희생하고 봉사하며 기도하는 이들에게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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