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말했든가,「걷는 자만이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나는 이것을 불변의 진리로 받아 들이고 싶다. 기실 우리 교회가 다른 것은 몰라도 복음 전파에 뒤 떨어지고 있는 근본의 하나가 여기에 있으니 말이다. 알다시피 성 바오로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으니 몸에는 발이 있게 마련이다. 바로 그 발의 존재가 평신도이다. 책상도 사람도 발은 밑에 있으니 주석을 요치 않는다. 고로 평신도가 움직이지 못하면 교회는 앉은 뱅이가 되어 걷는자를 따라가지 못하니 뒤질수 밖에 더 있는가.
오늘에 있어서 보다 발전한 본당은 예외 없이 평신도가 활발히 움직이는데 반하여 그렇지 못한 곳에는아직도 자립을 못하고 도움을 받고있는 현실이니 말이다. 따라서 발이 걷지 못하면 손이 기어야 하니 모든 일이 비능률적이 되고 만다. 예컨대 평신도가 능동적으로 미사에 나오고 교회 사업에 참여한다면 신부님은 그만큼 다른 일을 할 수 있는데 반하여 그렇지 못해서 일일이 방문하여 나오게 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고로 바꿔말해서 평신도가 움직이는 교회만이 발전할 수 있다는데 반기를 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사에는 인과로 이뤄지니 무력하게 된 원인이 없지 않을 것이다. 즉 발이 움직이려면 피가 통해야 하듯이 평신도는 믿음이 통해야 될 터인데 그렇지 못해서이다.
피는 주식을 먹어서 생기고 믿음은 주님의 말씀인 성경을 소화시켜서 되는데 성경을 읽지 않으니 힘이 없어서이다. 보다시피 선교 1백주년을 맞는 그들이 앞질러가는 것이 성경을 탈독해서 믿음의 힘으로 달리기 때문이다. 성경은 신자의 양식이며 무기이다.
굶어서 일을 못하고 무기 없이 적을 제압하지 못하는데 성경을 안보고 전교를 하고, 불의와 악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제 손으로 발을 못먹는데 아버지의 심부름을 못하듯이 스스로 성경을 보지 못하고 주님의 뜻을 전할 수 없다.
아기가 발을 먹게 되면 기던 것이 서서 걷는 것처럼 평신도가 능동적으로 성경을 읽으면 그와 같이 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아무리 호언장담하는 위인도 밥을 먹어서이고 성직자도 성경을 읽으면 그와 같이되는 것이 자연의 섬리이다.
아무리 호언장담 하는 위인도 밥을 먹어서이고 성직자도 성경을 읽고 믿어서이다. 그래서 예수님은『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리라』하셨다.
우리 격언에「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으니 천국 복락도 성경을 읽고 믿은 복락도 성경을 읽고 믿은 후라야 가능한 것이다 .왜 이렇게 그것을 가지고 되씹는가 하면 일반 서적을 세트로 쌓아 놓고 보면서 가지고 있는 성경은 접어 놓는 예가 허다하니 말이다.
요는 모국어를 모르고 우리의 뜻을 상대방에 전하지 못하는데 하늘나라 백성인 신도가 그 진리를 모르고 전할수 있겠는가? 따라서 축구선수가 머리의 생각대로 공을 못차면 허사이듯이 신비체의 발인 평신도가 그 뜻대로 움직이지 못해도 남는 것은 땀방울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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