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모두들 고향으로 돌아간 후, 도시는 텅 빈 느낌이 들 정도로 쓸쓸했다.
우리 가족들도 아버님이 계신 곳으로 가기 위해 일찍부터 서둘러야했다.
아버님이 계신 곳이라야 서울 근교인 우이동 이지만 아이들 등살에 늑장을 부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철을 탔다.
앉아 갈 수는 없었으나 전철 안은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추석이라는 것도 아이들에게 즐거운 일이겠지만 오랜만에 할아버지를 뵙는다는 기쁨에 아이들은 전철안이 운동장이나 되는 듯 몹시 신이 나 있었다.
전철은 공해로 가득찬 도시의 심장부를 뚫고 달리기 시작 했다. 가슴이 답답했다. 오장이 끓어 오르는 것 같았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도시의 매연을 대하는 것이 비단 그 날 만이 아니었는데 그 날 따라 더욱 그러함을 지금 생각해도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겠다.
전철은 노량진을 지나 한강 철교 위를 건너고 있었다. 비록 오염되어 흐르고있는 강이지만 물을 내려다 보니 그래도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그 때 였다. 어디서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에이ㆍ비ㆍ씨ㆍ디…」
한 여섯살이나 될까 말까하는 한 꼬마가 영어의 알파벳을 열심히 노래하고 있는것이다. 그 것도 한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을 해가며 말이다.
나는 귀가 좀 거슬렸다. 아무리 영어를 해야 먹고사는(?)세상이라 하지만 국민학교도 안 들어간 아이가 영어를 노래로 하고있다니 이건 좀 지나친 것이 아닌가 생각 되었다.
나는 슬며시 꼬마 앞으로 다가 갔다.
『꼬마야, 그거 누가 가르쳐 주었니?』
『아빠가요.』
꼬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신나게 대답을 하는 것이 었다. 그러니까 아버지 되는 사람은 자랑스러운 듯이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벙긋이 웃었다.
『그럼 너, 기억, 니은, 디귿, 그런거 알고있어?』
『그런건 몰라요!』
아뿔사!
한글을 몰라도 영어는 꼭 알아야하다니. 이게 무슨 청천에 날 벼락이란 말인가. 난 그만 얼굴이 화끈해져 왔다.
서울역에 닿은 전철은 그 꼬마를 토해놓고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단 이 꼬마의 이야기만아니다. 우리 주위에 한문이나 영어 등 외국어를 써야 유식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 한글을 쓰면 무식해 보이는것일가.
우리교회의 성경을 잠시 넘겨보자. 장장 이천 사백 칠십 쪽에 달하는 책속에(신약 1597쪽, 제2경전 328쪽, 신양505쪽) 한자라고는 한 자도 없다.
우리의 선열들은 비록 외국에서 들여온 천주교이지만 성경은 모두 한글로 만들어 교리를 전파했던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속이 후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교회의 일부 모임들이 우리말로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을 구태여 외국말 그대로 하는 경우를 더러 보았다.
우리집 안방에 걸린 동양화, 성모마리아는, 치마 저고리에 쪽을 지은 모습이다. 난 그림을 볼때마다 진정 어머니임을 느낄 때가 많다.
이제 우리도 우리식의 교회, 우리식의 믿음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나 깊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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