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어느 일요일.
가을 날씨 답지 않게 불어오는 바람은 겨울을 방불하리 만큼 몸을 움추리게 했다. 이 날은 시집을 안간다고 고집을 부리던 마리아(처제의 운명)가 좋은(? )신랑감을 만나 시집을 가는 날 이기도 하다. 처가의 어르신네들이 일찍 돌아가셨기에 돌보아 줄 사람이 없어서 천상 나는 新婦측의 어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해서 몇 안되는 형제들을 한 자리에 모아 혼배 미사를 올린다는 ㄷ읍으로 갔다. 용산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두어시간 남짓 버스는 고속도를 거쳐 천안을 경유하여 신나게 미끄러졌다.
다시 버스는 아산만을 지나 삽교까지 왔다.
다시 버스는 아산만을 지나 삽교까지 왔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가을 들판은 물론 가을 바다는 오래동안도 심지의 공해로 찌들은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었다.
잠시후 버스는 ㄷ읍에 닿았다.
평소 말만 듣고 생전 처음 와보는 ㄷ읍은 쌀쌀한 가을날씨와는 달리 아늑하고 포근함이 감도는 것 같았다.
우리는 어느 친절한 아주머니의 안내로 ㄷ읍의 성당을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ㄷ성당은 시가지로 내려다 볼 수 있는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늘을 찌를듯이 성당에 서 있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나를 숙연하게 만들기도했다. 미사가 끝난후라 그래서인지 성당마당은 활기찬 웃음과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었다.
우선 나는 신부님을 만나 인사를 드렸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의 신부님은 안경을 쓰신 모습하며 흡사 거울로 들여다 보는 듯했다. 더욱 반가움에 몇 마디 오고가는 이야기속에 신부님과 나는 금방 친숙 해졌다.
『읍내가 조그마해서 신부님이 좀 편안(?)하시겠네요』
그러나 신부님의 말씀은 뜻밖에도 이 곳 성당에 속해있는 공소가 무려 20개라는 것이다. 그것도 보좌 신부님이 안계신 형편이라니 보통 공소에 한번 나가려면 거리가 멀거나 험한곳이면 그 곳에서 하루해를 다 보낼때가 많이있으시다고 한다.
『그럼 퍽 힘드시겠네요』
『아닙니다. 모두 주님의 뜻이니까요』
정말 신부님의 얼굴에는 피로의 기색커녕 오히려 생기가 가득차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하루에 십여리는 보통이라시니 한 달이면 도대체 몇리나 다니시는 것인가. 교통수단이 편리한 도시라 할지라도 어려운 일인데 험한 시골길을 그렇게 다닐수 있음은 필경 육백만불의 신부님이 아니신가 모르겠다.
『신부님 제가 보좌 신부라도 좀…』
나의 말에 신부님은 껄껄 웃고 마셨지만 잠깐 눈을 대도시로 돌려보자.
물론 신자들이 지방 본당보다 많고 미사도 많아서 어려운 점이 많겠지만 공소 한 군데 없으면서 보좌 신부님까지 계신 곳이 더러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모두 우리교회에 신부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어느 신부님으로부터 들은 적이있다.
자녀를 낳아 훌륭하게 키우는 길이란 꼭 사장이나 기업주가 되게하는 길만은 아닐 것이다. 길잃은 한마리의 양을 찾을 목자가 되게 하는 길도 좋은 인생의 목적이 아닌가한다.
마리아의 혼배 미사를 끝내고 돌아오는길, 마리아의 행복을 빌기 보다는 하루에도 수 십리를 걸으며 공소를 찾아 어린양을 보살피는「육백만불」신부님의 영상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