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환자. 버림받고 소외된 그들, 강한 적대감과 저항으로 문전 걸식하던 어릴 때 본 나환자의 기억을 떠 올리면 이들이 어떤 태도로 맞아줄까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값싼 동정심을 나타 내어서는 안된다. 짙은 연민의 감정으로 대해서도 안되겠지. 구경꾼의 자세여서는 더더욱 안될 일. 그렇지, 형제적 사랑으로, 밝고 따뜻한 웃음으로 형제애를 나누고 와야지」 경남 산청성심인애원. 그곳에서 수고하시는 프란치스꼬회 수사님으로 부터 이곳 4백 30여명의 환우가 대부분 자활능력이 없고, 거의가 가톨릭신자이며 레지오마리애도 6개팀이 구성되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듣고 남자병동에 들어섰다.
처참하게 일그러지고 뭉개어진 얼굴, 감겨진눈, 잘려나간 수족.
『하느님, 당신은 사랑 자체이시고 우리 인간을 그처럼 사랑하시면서 어쩌면 이렇게도 모진 질병을 주셨읍니까?』
일순 화살을 하느님쪽으로 돌려보았지만 곧『너희가 교만하고 죄악에 빠져 있지 않느냐?』고 응답해 주신다.
병동을 나서서 마침 장례를 치르고 오는 많은 환우들과 만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밝은 미소로『어디서 오셨읍니까?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인사한다. 그들의 밝은 표정, 당당한 모습에서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고통받고 보속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보였다.
손목이 잘려져 나간 뭉툭한 손으로 가축을 기르고 분배 받은 땅에 채소도 가꾸면서 그들 나름대로 열심히 감사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저절로 숙연 해졌다.
그들이 못가진 건강한 육신을 비롯하여 숱한 은총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조그만 일에 불평과 불만, 한갖 물거품처럼 사라질 세속적 욕망의 추구에 급급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밝고 따뜻한 웃음으로 형제애를 나누겠다면 내 안면근육은 경직되고 입술은 얼어 붙어 버렸다.
아기자기한 맛이 풍겨나오는 부부 살림집을 지나 유치원에 갔다. 20여명의 원아를 돌보고 있다는 보모, 부모님이 데리러 왔다가 포기하고 울며 떠나 가기를 몇 번이나 했단다.
육친의 정을 마다하고 오직 주님의 진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다.
여환우의 병동을 지나오려니 노래 대결하자고 간곡히 붙든다. 진정으로 반긴 즐거운 노래 잔치였다.
미사시간이 되어 떠나야 겠다는 봉삽장님말에 무척이나 아쉬워하는 표정들 가운데에서 기도 소리가 들렸다. 방문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말과 아울러 그들이 우리를 걱정하며 하느님께 우리를 보호해 주시도록 기도해주시지 않는가.
수족도 제대로 못쓰고 발음조차 분명치 않은 그들의 기도는 우리들 가슴에 뜨겁게 와 닿았다.
미사때 성체를 영하고는 깊은 회한과 참회로 터져나오려는 오열을 가슴으로 삼켜야만 했다.
벽안의 노 신부님. 신부님의 서투른 우리말도 마음 아프다. 끝내 나는 밝은 웃음으로 따뜻하게 형제애를 나누지 못했다. 귀가하는 차안에서도 내 마음속엔 강물같은 뜨거운 물줄기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이번 산청방문은 교만과 탐욕과 위선의 탈을 쓰고 안으로 곪아 들어가는 자신을 알게 해주었다.
꾸르실료에서는 멀고 먼 피안의 존재로 아득히만 여겨지던 주님께로 바싹 다가간 희열에 떨었었고 이번 산청성심인 애병원형제들을 통해서는 잃어버렸던 내 진정한 참 모습을 다시 찾을수 있었다
주님, 어떤 형태로든지 당신을 알게 해주시고 우리 자신을 알게 해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찬미와 영광과 흠숭을 무궁토록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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