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아침부터 바빴다. 날씨가 몹시 추웠지만 그런데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3년 동안 정들었던 모교를 떠나는 아이들의 졸업식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졸업식장은 축하객들로 가득차 있어 소란스러운 느낌이 들긴하였지만 그런대로 숙연해 있었다.
『졸업이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다.』라는 교장선생님의 훈화에 이어 졸업상 상장등을 주는 순서로 졸업식은 예정대로 진행 되어 가고 있었다. 아이들의 콧날을 움직이게 하는 송사와 담사라는 것은 식 간소화에 의해 없어졌지만, 후배들이 불러준 졸업가가 잠시나마 졸업생들의 눈시울을 뜨겁게만 들어 주었다. 대략한 시간 가량, 졸업식은 모두 끝났다. 나는 우리반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종례를 하기 위해서 였다.
졸업장을 일일이 나누어 주었다. 들뜬 아이들의 마음은 졸업장이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운동장으로 뛰어가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졸업장을 나누어 준 후 창밖을 한참이나 내다 보았다. 마지막으로 이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그러나 아이들은 내 마음과는 달리 밖으로 빨리 안 내보내 준다고 아우성이었다.
한참을 망설인 후 난 그냥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아이들은 기다렸다는듯이 뒤도 안 돌아 보고 쏜살같이 운동장으로 달려들 갔다.
썰렁한 교실안은 다시 찬바람이 맴돌았다. 나는 무엇을 잃어버린 허전함에 의자에 앉아 다시 창을 내려다 보았다. 앙상한 겨울나무는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교실문을 열고 들어왔다. 육성회 이사까지 지냈던 숙이 엄마였다. 숙이 엄마는 그의 특유의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그동안 수고하셨다는 말과 함께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도 아울러 했다. 그리고는 『아참! 선생님 목이 얼마나 되시나요?』
나는 의아했다. 갑자기 목이라니 말이다.
『목…이라뇨?』
『아휴, 선생님도 와이셔츠의 사이즈가 얼마나 되냐구요』
『아ㅡ네, 전 그런것을 잘 안입습니다.』
그러나 숙이 엄마는 아이가 졸업하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갈 수 있느냐면서 기어코 나의 목의 치수를 알아가지고는 총총걸음으로 교실문을 나갔다. 허나 금방 와이셔츠를 사가지고 온다고 하던 숙이엄마는 그 날은 물론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오지를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나도 그 일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새학기가 시작될 무렵 인천에 볼일이 있어 전철을 타려고 전철역에서 서성이고 있을때였다. 누군가가 반색을 하며 나의 앞으로 다가왔다. 숙이 엄마였다.
『아휴, 선생님 일전엔 정말 죄송했읍니다. 그만 너무 바쁘다보니 제가 깜박했지 뭐예요ㅡ』
상대방이야 듣든 말든 옆사람이 쳐다보든 말든 숙이 엄마는 한참 동안을 떠들었다.
그 때 마치 인천행 전철이 오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이 차를 타려고 했다. 순간 『저, 선생님 이건…그 때…』
숙이엄마는 무엇인가를 나의 주머니에 넣어 주고는 줄행랑(?)을 쳤다. 꼬기 꼬기 접은 오천원짜리한장. 나의 얼굴이 화끈 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그 돈은 성당의 헌금으로 내고 말았지만 정말 허전하기 그지 없는 목값(?)이 아닐 수 없었다.
세상을 좀 더 정성으로 살 수는 없는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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