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엔 아이들이 둘이 있다. 큰 놈은 사내 아이로 이름이 맏걸(장남이란뜻)이요, 작은 놈은 계집아이로 미리내(은하수의 옛말)이다. 그런데 놈들의 미래의 꿈이 남다른 점이다.
어린시절의 꿈이란 대개 꽃수레를 타고 하늘나라를 가고 싶다든지, 아니면 사장, 과학자, 장군등이 되고 싶은 것인데 유독 놈들은 신부와 수녀가 되고 싶다는것이다.
언젠가 한번 이 이야기를 우리 아버님께 말씀 드렸다가 큰일(?)이난적이 있었지만, 나는 구태여 놈들의 꿈을 막을 생각은 전혀 없다.
물론 놈들을 더 두고 지켜봐야 하겠지만 말릴 수 없는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젬마(아내의 영명)때문이다.
그는 아주 어렸을적부터 성당엘 다녔다. 내가 영세를 받고 오늘날 이렇게 성당을 다니게 된 것도 모두 젬마의 덕분이지만 젬마의 성당 경력(?)은 나보다도 훨씬 많다.
젬마는 성당을 아주 열심히 다녔다 주일도 아주 잘 지켰다. 그러나 보니 자연 신부님과 수녀님들께 귀여움도 받았다. 그럴수록 젬마의 신앙심은 더욱 깊어갔다.
어느날 젬마는 수녀원엘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 듯이났다. 수녀가 되는것, 그것이 젬마의 꿈으로 자라고 있었다. 수녀가 되기 위해선 다른 사람과 달리 몸과 마음이 정숙해야하고 순결 해야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은 그는 혼자 수련을 쌓기 시작했다.
물론 집안의 어르신네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런데 젬마의 나이가 성년이기에 이르러 뜻밖에도 오빠와 어머니가 2년 간격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젬마에겐 큰 시련이었으나 모두 주님의 뜻으로 생각한 그는 모든 것을 참고 견뎠다.
정신을 가다듬은 얼마 후 수녀원을 두드렸다. 대모님이 후원길에 나섰고 총장 수녀님의 허락도 받았다. 드디어 며칠만 있으며 그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젬마는 열심히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무렵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젬마의 날개 옷을 감추었다. 나뭇군이 목욕하는 선녀의 날개옷을, 감추듯이 말이다.
그때 나를 만나지 않았으면 젬마는 지금쯤 정숙한 수녀로 하느님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었을 텐데. 아이들 키우랴, 빨래하랴, 생활의 굴레바퀴 틈에서 여념이 없다.
지금도 가끔, 몸은 비록 시집을 왔지만 마음은 수녀원 뜰에 서성인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를 하곤한다.
이제 아이들의 꿈과 함께 젬마의 꿈도 함께 실현 될수 만 있다면 참 좋으련만 우리 속담에 평양감사도 제가 싫으면 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놈들은 과연 지금의 꿈을 어느 정도가 기억하며 실현할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하여튼 지금도 우리집 장농속엔 젬마의 날개 옷이 깊이 간직 되어있다.
훗날 아이들이 좀 더 성장한 다음에 젬마가 이루지 못한 꿈의 날개옷을 놈들에게 입혀 보리라.
동짓달 기나긴 밤, 시간은 벌써 자정을 넘었는데 젬마의 창가에 아직도 불이 환하게 비추고 로사리오 송이송이마다 강물이 흐르고 있는것을 보니 하루를 정리하는 기도가 덜 끝났나보다.
『주님, 이 아이들을 당신의 도구로 쓰게 하여 주소서. 당신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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