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알렐루야! 이 땅에 예수 탄생 하셨도다. 알렐루야!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성탄절을 맞아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데 있어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자세를 취하고 무엇이 되려고 하는지를 겸허하게 성찰해야 하겠다. 하여 예수의 탄생은 오늘 어떤 의미를 갖는지 또한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실제로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에 성탄을 축하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한국이라는 생활의 자리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었다는 명제를 내 버리며 인간「나자렛」예수와 그의 메시지안에서의 하느님의 활동을 저버릴 위험에 처해 있지나 않은지 모르기에 말이다.
확실히 예수 탄생의 사건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하느님께서 인류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계심으로써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한거룩한 사람이 죄 있는 인류 안에 출생하였다.
그러기에「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인 영」은(루까1·35) 새로운 인간인 예수의 탄생에서 생명을 주는 일을 대행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의 노래」와(루까1·46~55)「즈카리야의 노래」에서(루까1·68~79) 선언되고 있듯이 새로운 시대의 새벽은 밝아왔다.
복음사가 마태오는 예수탄생의 기사에서 예수가 다윗의 아들이며, 아브라함의 아들이며, 주 그리스도 즉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윗의 아들로서의 예수는 이스라엘의 구원사명을 받고 또 아브라함의 아들로서는 모든 백성을 가지고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예수의 역할은 하느님이 우리들 가운데 현존한다는 것이다.
예수가 어린아이라든가 맹인과 절름발이를 구하는 것은 다윗의 아들이기에 그가 약한자 · 맹인 · 절름발이 ·고아 · 과부 · 노예 · 갇힌자의 총칭인 겸양한 사람으로서 탄생한 왕이기 때문이다.
그 다윗의 아들인 예수는 당시의 세계에서 압박자 착취자의 희생이 된 고아 과부나 맹인 절름발이 노예의 대표자인 구원의 주님으로서, 스스로도 유아로서 압박자의 박해를 받았던 것이다.
아기 예수는 가난한 사람 신체 장애자 맹인 절름발이 억눌린 자등 사회로 부터 아주 소외된 자의 대표자로서 프토꼬이(ptochoi) 가난한 자의 신분을 취하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하층 민중의 복음으로 말이다.
그런데 예수의 탄생을 기념 축하 하고있는 오늘의 교회와 아울러 그를 따른다는 그리스도인은 과연 어떠한 형편에 있는 것일까? 또한 현대사회는 어떤가?
로마클럽이 걱정스럽게 경고하면서「남획과 남벌과 낭비에 의한 천연자원의 고갈 공해로 인한 환경 오염의 진행 ·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이로 인한 식량난 · 군사기술 진척에 따른 대규모 파괴운동 , 특히 인간성 상실 등 산더미 같은 위기가 도래하고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는 굶주리는 기아 인구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며 유엔 추계에 의하면 현재 무려 4억명에 달하는 인구가 식량 부족으로 인한 영양실조에 걸려 있으며 굶어 죽는 사람이 AP 통신에 의하면 매일 초 마다에 25명 이라고 한다.
사실 세계 각처에 권력자와 금력자의 억압 착취로 말미암아 신음하는 민중이 얼마나 많은지 모를 지경인 것이다.
이러한 현대사회의 정황에서 예수의 관심사를 관심사로 하고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무엇을 해야하며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어야 하는지는 예수 탄생의 사건적 의미에서 볼진대 명약관화한 길이 아닌가 한다.
성탄절을 하나의 행사로서 습관적으로 치루고 만다면 더우기 예수 탄생의 의미와는 동 떨어진 행위를 하고 있다면 아기 예수의 아픔을 통한 하느님의 아픔은 어찌한다는 말인가?
우리의 교회와 우리 들은 그럴리 만무 하지만 다윗의 아들 예수로서 대표 되는 가난하고 억압되고 병들고 신체에 장애가있는 사람들과 고통을 같이하는 가운데 그들과 함께『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신(히브리13ㆍ8)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여야 하겠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메시아적 사명을 수행하며 그들에게 희망을 선포하는 하층 민중의 복음을 말과 행동으로 증거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정 가난의 영성에 사는 참 그리스도인가를 확인하고 이 고통의 시대에 타인을 위해 자기를 버리는 마음의 다짐을 굳게 하여야한다. 또한 교회도 외형적 성장에 도취되지 말고 가난의 모습을 취하고 민중 속에서 민중과 함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다.
그럴 때에 오늘날 교회는 예수탄생의 사건에 현대적 의미를 부여할수 있을것이며 참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현대사회에 존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백성이여 잠에서 깨어 나시오. 하느님은 당신들을 위해 사람이 되셨읍니다. 잠자는이여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죽음에서 일어나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당신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실것입니다. 나는 다시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사람이 되셨읍니다』(성 아우구스띠노의 강론)
우리 모두 오늘 구세주께서 탄생하셨으니 기뻐하자. 축하하자.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과 묶인 사람들과 눈 먼 사람들과 억눌린 사람들과 다함께 말이다.
예수 탄생으로 최후의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는 표지는 똑똑히 드러났음을 상기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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