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크지 않은 둥근 모양의 아담한 성당과, 개나리 울타리와, 뒷산과 자그마한 마당은 다람쥐 들이 휘젓고 다니는 본당에서 나는 첫 보좌 신부 생활을 지냈다.
나는 이 다람쥐 노는 동산에서 우리 다람쥐(주일 학생)들과 뛰놀고 웃으면서, 사귀며, 친하며, 정을 주고 받았다.
성탄날엔 성탄카드를 서로 선물로 주고 받고, 예쁜 옷을 입고 손에 예수님께 드리는 성탄카드를 들고 나와 성탄나무를 장식했다.
『어린이 여러분, 성탄날엔 우리 모두 예수님께 성탄카드를 드려요. 성탄날은 예수님이 나신 날이예요. 예수님 생일날이예요. 그런데 우리 사람들 끼리만 선물과 카드를 주고 받으면서 축하하고, 정작 주인공이신 예수님께는 카드한장도 안드리면 되나요. 우리 모두 성탄날엔 예수님께 우리 마음 - 기도가 담긴 성탄카드 한장씩 봉헌해요』
그 때의 어린이들과 선생님들의 글을 모아「다람쥐 노는 동산」이란 글 모음 집을 만들어 보았다. 내 방에 있는 값 비싼 책들보다 사랑이 가는 책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낸 봉헌예물로 만든 책이기에 더욱 사랑이 간다.
그 책속엔 획도 비뚤고 틀린 글씨 그대로의 성탄카드 내용도 담겨있다.
⊙ 예수님 우리 오빠가 밤(밥)을잘먹게 해주세요.
⊙ 예수님 저는 겨울이 되면 강기가 걸였습니다.그런데 아진도 강기가 안났습니다. 예수님 저를 강기에 조심하지 않게 해주세요(조심하여 감기에 걸리지 않게 해주세요)
⊙ 예수님 우리 어머니를 병을 낳게 해주세요. 그리고 우리동네 어머니들과 잘 놀게 해주세요. 네가 우리 어머니 약을 지어 완읍니다.
⊙ 예순님 내가 성탄날 단결웅변을(단결이란 웅변을)하는데 틀리지않도록 도와주세요.
⊙ 예순님 나는 예순님을 많이 조와합니다.
⊙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합니다. 예수님 하늘나라에서도 즐거운성탄을 보내세요. 그런데 예수님도 생일날에 미역국을 잡수시나요.
⊙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아이들이 많이 나올까요? 기뻐해주세요 예수님 열심히 성당에 나가겠어요. 그리고 친구 기영이도 나가겠다 하였어요.
⊙ 예수님 성탄날이 다가왔어요. 예수님 그런데 집이 없는 아이는 집이없어서 내가 요술을 부려 엄마 아빠를 만나게 했으면 좋겠어요.
⊙ 예수님 새해에는 저의 아빠를 성당에 나오시도록 도와 주세요. 이것이 제 기도입니다. 꼭 들어주세요.
⊙ 예수님은 물위를 걸으셨다지요. 예수님 저는 손에서 손바람도 나오는 홍길동 같이 도술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예수님 그 비결을 가르쳐주세요.
⊙ 예수님 올겨울에는 제 엉덩이와 코를 보해주세요.
⊙ 예수님 죄를 짓고 벌을 받고 새 사람이 될려고 옥문을 나선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용기를 줄수 있는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주세요.
예수님도 보시고 빙긋이 웃으셨으리라. 지금쯤은 그 다람쥐들의 기도가 이루어 졌으리라.
이번 성탄엔 나도 그 때 어린이로 돌아가서 예수님께 성탄카드를 드려야겠다. 그 다람쥐 노는 동산에서 사목하시던 동료 신부님이 병으로 본당을 떠나셔야만 했기 때문이다.
『예순님 우리 신부님이 아파요. 너무 아파서 본당을 떠나셔야만 됐어요 어린이의 기도를 잘 들어주시는 예순님.
우리 신부님 병을 꼭 낫게 해주셔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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