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기억해야 하거나 기억할 만한 일들이 너무나 많다. 개인이나 가정 안에서도 그렇고, 하나의 공동체나 국가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교회도 이제 두 세기가 넘는 역사를 갖게되면서 더 많은 것을 기억해야만 하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잊지 않고 하나하나 챙겨가면서 기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그 많은 일들 중에서 「의미있는 것이 무엇이냐」에 초점을 맞추고, 여기에 「주년」이나 「기념」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되새겨 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2001년 1월이면 신유박해와 이로 인해 죽음을 당한 수많은 순교자들의 신앙과 행적을 기억하고, 동시에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해 볼 수 있는 20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근래 언론 등 주위에서 「신유박해 200주년」이란 말을 자주 발견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냥 지나칠 지도 모르는 모순이 있다. 교회나 신앙 후손의 입장에서 「과연 박해에 기념이란 단어를 붙여 사용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바로 그것이다.
신유박해는 1791년의 신해박해(辛亥迫害)에 이어 1801년에 한국교회가 받게 된 두 번째의 공식적인 백해요, 을사년(1785년)의 사건과 정사년(1797년) 이후의 충청도 박해, 을묘년(1795년)의 포도청 순교 사실까지 포함한다면 다섯 번째의 교회 탄압사건이 된다. 그러나 박해의 규모나 교회가 입은 타격, 순교의 범위 등에서 본다면 초기 교회가 겪은 최초의 대박해(大迫海)라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겨우 터전을 잡아가던 교회의 뿌리와 신앙의 싹이 잘려나간 사건」이었다.
물론 여기에서 신유박해의 내용과 성격을 설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교회 안에서 중시해야 할 의미가 「박해 자체에 있는 것인가」아니면 「박해로 인해 탄생한 순교자에 있는 것인가」에 있다. 어느 면에서 본다면 정치나 사회적인 문제와 관련된 사건 자체가 중시될 수 있지만, 복음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방향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회 안에서는 그동안 천주교를 증오하는 무리들이 일으킨 박해나 사건보다는 순교자의 용기있는 행적이나 영광을 중시해왔다.
기해·병오박해보다는 기해·병오 순교자를, 병인박해보다는 그 결과로 얻어진 순교자들의 영광을 기억해왔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의미를 생각하지도 않고 무심코 「신유박해 200주년 기념」이란 말을 사용해오고 있다. 그러나 박해사건에는 「주년」이란 단어를 붙여 쓸 수 있지만, 「기념」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 그 기념 자체가 교회 안의 일이기 때문이다.
2001년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신유박해로 인해 죽음을 당한 신앙 선조들」이고 기념해야 할 것은 「순교자들의 혁혁한 순교 행적」이다. 따라서 「신유박해 200주년 기념」이란 말은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 기념」으로 고쳐 사용해야 한다.
2001년의 기념 행사는 궁극적으로 모든 신자들이 초기 순교자들을 자발적으로 현양하고, 이를 시복·시성운동으로 승화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천주교를 증오하는 무리들이 일으킨 박해를 기념하는 모순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다. 박해 자체와 관련된 연구는 그 기념을 위한 일부분의 작업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모순이 고쳐질 때 모든 이들이 2001년의 기념행사가 지니는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행사 자체도 훌륭한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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