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유럽 여행 중에 독일에 거주하는 어느 교민이 전해준 이야기다. 모두들 감동깊게 감상했던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독일에서 방영되었을 때 독일인들이 보여줬던 반응의 일단을 들려주엇는데 영화가 방영되는 동안 극장 이곳 저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계속되었으며 극장을 나서는 젊은 남녀들은 서로 기대어 눈을 붉히고 있었다고 한다. 2차 대전 중 600만 유다인들을 가스실에서 살상했던 나치스트의 폭거에 충격을 받았음에 틀림없었으리라. 동시에 60여년전 저지른 잘못을 자신들의 과오로 받아들이고 반성의 눈물을 흘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욱 가슴 찡하게 전해들은 이야기는 그 영화의 스필버그 감독을 프랑크푸르트시의 명예시민으로 추대하고 시를 방문한 스필버그 감독을 시민들이 열렬히 환영했다는 것이다. 과거 아픈 역사를 일깨워준 것에 감사하고 꽃다발들 전하는 독일인들의 모습을 직접보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이와 대비해 일본인들의 자세를 비판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 보다는 독일인들의 자세에서 진심으로 반성하는 마음을 배우고자 한다. 구차하게 변명하기보다는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언제나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 과오를 범하고 산다. 개인이 모여 만든 집단도 예외가 아니며 정부와 국가도 항상 정의롭게 일을 처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이나 집단, 사회와 국가의 과오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방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지금까지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뉘우치는 모습이 필요하다. 스스로 과오를 인식하지 못하고 뉘우치지 못할 때는 이를 제재할 수 있는 메카니즘이 작동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으니 잘못한 사실을 인정하지도 않고, 따라서 반성하고 뉘우치는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을 제재할 수 있는 제도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못한 상황이니 결국 앞날이 암울해 보인다.
현재 사회적으로 큰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 의약갈등이다. 의약분업을 앞에 놓고 의사회와 약사회 그리고 정부는 각기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기에 현재의 대치상황을 맞게되었는가 냉철하게 반성해야한다. 대치상황을 상대방과 제3자의 탓으로 돌릴 때 파행은 또 다른 파행을 낳게 될 뿐이다. 최대한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갈등의 조장은 모두의 파국으로 끝난다. 최소한의 권익을 서로 인정하면서 허심탄회하게 타협을 이끌어 나가는 방법이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의료인이라면 최소한의 타협점으로부터 대화를 시작해야한다.
정부는 정부대로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부적절한 대응을 솔직하게 인정해야한다. 사회에 존재하는 이해갈등을 취합, 조정해야 하는 여야는 상대방의 잘못만을 부각시키느라 여념이 없고 정부 역시 이해갈등을 단순한 집단이기주의로 몰아 부치고 있으니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사회가 민주화, 다원화될수록 분출되는 이익은 많아지고 이러한 이익을 취합, 조정, 타협해야할 여야, 의회, 행정부의 능력이 필수적이건만 현재 그러한 능력을 충족시키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잘못을 지적하고 치유할 수 있는 메나니즘이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잘못을 지적하고 앞길을 바로 인도하는 스필버그 감독의 존재가치가 사장되어버린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스필버그 감독의 존재가치는 그 사회의 도덕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공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집단들이 그들의 도덕성을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어야함은 물론이고 그러한 도덕성을 사회통념적 기준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회구성원의 수준이 요구된다.
과거 가해자로서 역사의 죄인이었음을 반성하는 독일인들이 어떻게 경제를 일으키고 통일을 이끌고 사회 통합을 이루어나가고 있는가를 바라보면서, 과거 굴욕의 식민지배를 경험한 피해자로서 동시에 IMF체제하에 있는 우리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대비해 봐야한다. 우리는 아직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데 인색하고 나의 잘못보다는 상대방의 약점을 지적하는데 익숙하다. 과거 나치스트들의 과오를 자신들의과오로 받아들이는 독일의 젊은이들처럼 지난 수십 년간 우리가 겪어온 파행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잘못, 아니 나의 잘못을 찾아내 반성하는 것이 급선무다.
분단과 전쟁, 독재와 빈부격차, 소외와 지역갈등의 과정에 투영된 과오를 우리 자신의 것으로 반성하고 회개할 때 비로소 우리사회의 도덕성이 새롭게 정립되고 그 도덕성을 기반으로 사회순화의 메카니즘이 작동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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