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들어 두번의 장례미사를 드렸다.
바올라는 12살에 결핵성뇌막염에 걸려 15년간을 병상에서 지냈다. 임종순간까지 그렇게도 맑던 눈동자와 앙상히여윈 손으로『신부님, 악수해』하던 그손을 잊을수가없다.
병자의성사를 받고난뒤 2시간만에 숨을 거두기까지 한손으로는 15년간을 뒷바라지하던 어머니의손을 꼭잡고 다른 손으로는 언니ㆍ오빠ㆍ동생을 번갈아부르며 손을잡던 바올라였다.
장례식날은 흰눈이 소복이 내려쌍이었다. 그 고운영혼이 하늘에 닿았다고 남은 사람들에게 알려라도 주듯이.
15년간을 하루같이 뒷바라지하며 기도하던 그손을 오늘 요한 할아버지 집에서 만났다.
요한 할아버지는 대장암으로 앓다가 돌아가셨다. 요한 할아버지는 자신의병이 그토록 중한병인지 일종순간까지모르겼다. 가족들이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알려드리지 않았던것이다.
한손을 잡고 마지막때임을, 하느님의 품으로 갈때가 왔음을 알려드리며 이 순간이, 이 고통이 사람으로서 하느님과 이웃(가족)에 대한 사랑의 마지막실천때임을 찬찬히 말을드렸을 때 요한 할아버지는 한손으로 성호를 그으셨다.
그 손은 성탄때 어린이를 위해 노트 20권을 싸보낸 손이었다.
언제나 내 마음의 고향이 되어 주시는 할머님의 손이 생각난다.
그때도 추운 겨울이었다. 학교 교실에서 춥게 먹은 점심에 체했는지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배가 몹시 아팠었다. 배앓이하는 나를 뉘이고 할머니는『할미손은 약손이다』를 수없이 뇌이면서 내 가슴과 배를 쓸어주시어 낫게 해 주셨다.
가슴과 배를 쓸어주시며 피난길의 얘기를 도란도란 들려주셨다. 피난길에 낳았다해서「홈피란」이라고 이름 짓게된 내 친구의 얘기며, 난지 두달밖에 안 된 나를-손과 발은 할머니의 배자(배子)를 뜯어 감싸고-업지도 못하고 안고 피난길을 갔었다는 얘기며…
그 할머님은 손주인 내가 신부가 되어 자신을 위해 미사 한번 드려주는 것을 소원으로 지니시고 기도하며 사셨다. 겨울날 복사길에 더운 물을 데워 주시며, 새벽미사에 손잡고 가시던 할머님은 내가 신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방학때를 기다리곤 하셨다. 내 좋아하던 음식을 손수 만들어놓고서.
평소 가슴앓이 지병을 앓으시던 할머님이 돌아가겼을 때, 내가 감루를 흘린 것은 할머님의 영구를 들어낸 장판바닥의 성냥불티 자국을 보고서였다.
오래 앓으시던 할머님이 누워 계시던 그 주위에 담배를 피우실 때 떨어뜨린ㆍ성냥불티 자국이 살아생전의 병으로 인한 기나긴 고통의 흔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신부가 되어 여러 번의 병자성사를 드렀다. 그때마다 병자성사를 받는 분들이 일주일을 넘기지 않고 돌아가시는 체험을 지금껏 하고있다.
가슴과 배를 쓸어주어 낫게해주시던「할미손은 약손」이 함께하시는 것일까.
살아생전 병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으셨던 할머님이 이젠 천국에서 자유롭게 두손으로 활동하시며 도와주시는 것일까.
그 할머님의 소원대로 신부가 되었을 때 이런생각을 했다. 『무엇이 바르고 현명한 삶일까. 아마도 그건 자신의 우물에서 퍼낸 삶을 살지않고 주님의 우물에서 길어낸 삶을 살아가는 것이겠지. 살아생전은 자신이 타락하지 않도록 한쪽손은 주님의 짐장에 맞대어놓고 다른 한손은 그우물에서 퍼낸물을 전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겠지』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