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바귀 한포기를 유리컵 속에 넣어 키운 적이 있었다. 햇볕이 따뜻한 어느 봄날 우연히 내방 앞뜰에서 손가락으로 캐어 냈었다.
처음엔 며칠쯤 자라다가 뿌리가 홀쭉해서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작은 인상 모양의 뿌리가 홀쭉해 주기는커녕 새로운 실뿌리를 내며、새잎을 내며 잘 자랐었다. 먹는 것은 물뿐인데.
우연한 기회로 그저 생각 없이 키우는 동안 『신부님、취미 참 묘하다』는 생각치도 않은 말을 들으면서、향기 나는 꽃을 키우기엔 정성이 모자라고 게으른 나에게는 일주일에 물 한번 갈아 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씀바귀 뿌리가 내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고、뿌리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소설 「뿌리」의 쿤타킨테는 「토비」라는 이름을 거부한다. 강을 「캄비블통고」라고、기타를 「코」라고 자기 말로 부른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자식들에게 들려준다. 노예의 자리에서 그렇게 행한다는 것은 아픔-수난과 고통-을 당할 것이고、그런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은 자식들에게 부질없는 아픔-번민과 고뇌-만을 안겨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의 사람다운 삶이 아닐까. 사람다운 삶, 다름 아닌 사람으로서의 올바른 삶을 이루려는 과정에 아픔이 따른 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사람이 어떤 양상으로는 원하는 올바른 삶-신념의 삶, 사랑의 삶, 아니 건강한 육체의 삶에도 아픔이 따른다는 것은 그것들이 사랑다운 삶에의 투쟁이요 의지이기에 당연한 것이 아닐까.
어쩌면 사람이 그 걷는 길에서의 아픔은 그 걷는 길이 사람의 삶다운 삶、올바른 삶이란 것을 표증 하는 것이 아닐까.
뿌리를 땅에 박고、그래서 싫든 좋든 땅의 내려 누름을 받는 씀바귀 뿌리처럼 원죄의 땅에 발을 딛고 눈을 들어 가슴을 드높여 하늘을 우러르며 사는 사람의 삶에 아픔이 떠날 날이 있을까.
씀바귀 뿌리가 그 압박받는 땅에서 영양분을 찾아 섭취하듯、삶에의 아픔은 사람에게 올바른 삶을 찾게 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고통과 수난 번민과 고뇌를 동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세례로 거듭나 새 이스라엘 백성이 된 우리는 땅에서의 생활 동안 되풀이 되는 아픔에서 거듭날 때에만 성숙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3년 고개에서 넘어진 노인이數없이 굴러 壽헤아밀 수 없이 살 수 있었던 얘기처럼.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창세3ㆍ19)하느님과 함께、아니 「하느님 없이」도 땀 흘리는 아픔으로、말보다 실천으로 가려지는 성숙한 삶에 성실하여야 하지 않을까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옥중서간」에서 『우리가 성실할 수 있는 길은 하느님이 없을지라도 세계에 살면서 하느님 앞에 설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로 하여금 이 인식에 도달하게 합니다. 우리와 함께 있는 하느님은 곧 우리를 버리는 하느님 입니다. (마르15、34)가 공된 가설로서의 하느님 없이 세상에서 우리를 살게 하는 하느님은 항상 우리 곁에 서 있는 하느님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젠 씀바귀 뿌리를 바라보는 내 눈은 내 삶을 바라보는 눈이 되고、사람된 올바른 삶을 사는 모든 사람들을 바라보며 함께 하려는 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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