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도 재의 수요일 2월 16일부터 예수 빠스카 축일을 준비하는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사순절 전례에는 예수의 수난, 성교회의 보속, 부활이 성사인 성세성사가 주요한 세 가지 사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랫동안 사순절에 교회는 전례식 신심과 아울러 개인적 신심에서 십자가에 다리신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고 자기와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하여 대소재와 고신 극기의 보속 행위를 실행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와 사회에 있어서 왜 무엇 때문에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며 고신 극기로 보속하여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하여 간단히 확고부동한 전통과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것으로 끝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같은 분으로서』(히브리13ㆍ8)오늘날 이 땅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 많은 현대인들이 한 순간도 쉴 사이 없이 부단히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예수의 아버지이며 창조주인 하느님을 죽은 자로 취급하고 있는 형편이다.
불행하게도 실은 그리스도를 신앙 고백하는 그이 백성인 우리들에게서도 왕왕히 거의 마찬 가지로 신앙 안에서 복음을 방해하고 있는 따위의 불신앙에 살아가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예수를 따르던 신앙인이 빌라도의 부하와 함께 골고타를 바라봤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사도 바오로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적은 갈라디아와 꼬린토의 교회 안에 또 필립비에도 로마에도 그리고 동요하는 신자들 사이에 뿐만 아니라 열심하고 경건한 신자들 사이에도 있었던 것이다.
사실 아직 예수는 한국 사회의 한복판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돌이 던져지고 더욱이 십자가에 달려 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나와 너 그리고 이 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말이다.
오늘날 십자가의 신비는 천박화하고 혐오화 하고 또한 경직화하고 있다.
이러한 십자가의 적의(敵意)가 존재하는 현실 상황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일상의 현실로부터 예배 장소로서의 교회의 건물 안에로, 열심한 신심의 깊이 속으로 도피하고 있다면 또 일요일이든 자기의 마음속이든 간에 전례적 신심적인 형식에만 매달려서 얼마만큼 외형적으로 굳건히 하고 있다면 제아무리 교회 법적으로 의무를 다 한다 한들 십자가를 자랑하는 믿음이 못 된다. (갈라디아6ㆍ13참조)
그리고 습관적으로 그렇게 해 왔으니 으레 해보는 걸치래 뿐인 신앙 행위 따위로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며 보속 행위를 한들 참 예수의 십자가를 덮어 숨기는 꼴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는 본질적으로 모든 종교적 환상에 대결하고 있으며 또한 형식적 경건 주의적 신앙 행위에 도전하고 있다. 그리하여 인간에게 그 본래의 인간성에로 돌아가도록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소의 시키고 분리시키며, 억압하는 이 사회에서 그리스도교 자체가 인간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느냐 아니면 그 반대가 되느냐 하는 문제는 그리스도교가 십자가에 다려 처형당한 예수를 그리스도교에 대한 어떤 낯선 자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그리스도교의 실존을 결정하는 주님으로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라는 어느 신학자의 말을 깊이 명심하여야 하겠다.
오늘날의 신앙에 있어 문제되는 것은 고통 아픔 없는 신앙 즉 십자가 부재의 신앙일 것이다. 부활에의 십자가 앞에서 아픔을 되씹는 침묵의 하느님과의 고통을 통한 만남이야 말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사순절에 즈음해서 소망할 일이 아닌가 한다. 그리하여 나의 죄로 우리의 죄로, 교회의 죄로 말미암아 이 순간에도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있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두려워하며 아픔의 체험으로 보속하기로 다짐하여야 하겠다.
한국 천주교회는 오늘날 외형적으로 수량적으로 놀라우리만치 성장했다. 앞으로 보다 더 크게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영적 상업화라는 말이 신문에 나올 정로로 교회의 바겐세일이 종교적 기업으로 노골화할 가능성이 만분의 일이라도 있다면 순례의 도상에 있는 「죄인의 교회」답게 『거룩하면서도 항상 정화되어야 하겠기에 끊임없이 회개와 쇄신을 계속하여야 할 것이다』(교회헌장8) 더욱이 『그 기원과 성장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의 옆 가슴이 열려 피와 물이 흘러내릴 때에 표현되었던』(교회 헌장 3)교회이기에 당연히 한국 교회의 성장 발전은 『십자가에서 당하실 예수의 죽음에 대한 주의 말씀으로』(교회 헌장 3) 이뤄져 애 할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어느 사순절인들 큰 의미가 없을 리 없지만 교회 창립 2백주년을 눈앞에 두고 그 기념행사 준비에 분망하는, 더욱 특별 성년이 시작되는 올해의 사순절이야말로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 조상 순교자들의 수난을 함께 묵상하며 나의 죄뿐 아니라 이웃의 죄, 사회의 죄악 민족의 죄악에 대하여 보속할 때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내가 기뻐하는 단식은 바로 이런 것이다. 주 야훼께서 말씀하셨다. 억울하게 묶인 이를 끌러 주고 멍에를 풀어 주는 것, 압제받는 이들을 석방하고 모든 명예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 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 주며 제 골육을 모르는 체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너희 빛이 새벽 동이 트듯 터져 나오리라』(이사야58ㆍ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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