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사에 성호 긋는 버릇이 단단히 들어서 하루를 보통 수십 번씩 성호를 그으며 사는 것 같다. 하루 생활 모든 일과들 성호로 시작해서 성호로 마무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자리에 앉은 채로 성호를 한다. 글을 쓰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든, 전날의 과음으로 늦잠을 자고 일어나든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렇게 성호를 그은 다음 옷을 입는다. 그리고 세수를 한 후 아침 기도 시에 성호를 하고 식사 전후에 또 성호를 한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하는 것으로서 나만의 특별난 것은 아닐 터이다. 나의 성호 긋는 특이한 버릇은 그 다음부터 나타난다.
나는 직장이나 직업이 달리 없는 고로 오전에는 주로 집안에 들어앉아 글을 쓰는데, 그리고 성호와 더불어 봉헌기도를 올린 다음 글을 쓰는데, 일하는 동안 무수히 성호를 하게 된다.
매우 어려운 대목을 돌파할 경우라든가, 글이 잘 써지지 않거나 몹시 고심스러울 경우라든지, 그리고 마땅히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여러 번씩 성호를 해대는 것이다. 그러다가 글쓰기를 마치면 또 성호와 봉헌기도-.
외출을 할 때는 꼭꼭 지블 나서면서 성호를 긋는다. 그리고 누구와 만나 술집 목로에서 대포 한잔을 마실 때로, 다방에 가서 차를 마실 때도 성호를 한다. 책방에 가서 책을 볼때도 그렇고, 차(車)를 탔을 때도 성호를 잊지 않는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면서 성호, 또 이런저런 일로 성호, 잠을 자려고 자리에 누워서 마지막으로 성호…. 이러니 하루에 가히 수십번씩 성호를 그으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 이러한 성호 긋기 버릇은 월남의 정글 속 그 생사의 협곡에서부터 비롯된 듯도 싶은데, 아무래도 보다 원천적인 것은 어머니의 영향일 것 같다.
내 어머니는 지금도 솥 두껑을 열고 밥을 풀 때마다 성호를 한다. 출가한 딸들로부터 편지를 받을 때도 성호를 긋는다. 매사를 성호로 시작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 성호를 그으며 어머니의 옛 모습을 떠올린다. 어머니는 이빨 갈이하는 나의 흔들거리는 이에 실을 감아 뽑아 줄 때도 성호를 그으시곤 하였었다. 숟가락 물에 쓴 가루약을 타서인지 끝으로 살살 저어 내게 먹여줄 때도 어머니는 으례 성호를 그으셨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나에게 익모초 물을 먹이시던 모습이다. 내가 먹은 것이 체해 배 아픈 기색만 보이면 어머니는 재빨리 익모초를 뜯어다가 돌멩이로 팍팍 찧어 물을 짜서 그 보기에도 몸서리나는 진초록 빛깔의 익모 초물을 한 사발씩 내게 먹이곤 하였는데, 으례 한 손에는 장작개비가 들려 있기 마련이었다.
냄새만 맡아도 기겁하리만치 쓰디쓴 익모초 물을 쉬이 마시려 들지 않는 나에게 어머니는 일을 앙다물고 장작개비로 호통을 치시던 것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익모초 물을 마실 땐 그 장작개비 들었던 손으로 으레 성호를 그으시곤 하였었다.
나는 옛날 어머니의 그 익모초 물 덕분에 오늘날 이리 위장이 튼튼하여 술을 잘 마시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나는 매사에 성호를 그으며 사시는 그런 어머니의 모스에서 엄숙하고 경건한 기운 같은 것을 느끼고 배운 것만 같다. 원초적이고 순수한 어찌 보면 샤마니즘 적인 요소도 스며 있는 그런 신앙의 형태에 대한 야릇한 감명이랄까. 어떤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나는 앞으로도 계속 성호 긋기와 더불어 생활할 것이다.
■지금까지 춘천교구 청편본당 주임이신 김현준 신부님게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이번호부터는 소설가이며 대전교구 태안본당 사목위원인 지요하씨께서 집필 해주시겠습니다. <편집자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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