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新東亞」9월호에 「신앙의 매개물」이라는 제목으로 수필 한편을 썼었다. 죽음의 문턱앞에 거의 다달아 있는 청년교우 안드레아(지금은 고인)의 앙상한 가슴팍에서 유난히 빛나고 몸고상을 본 순간 내 가슴에 인 미묘하 파문과, 그것에 연유하게 떠오른 10여 년 전 월남에서의 나의 모습-성물에 몹시 집착하였던 때를 연관지어 써본 15매짜리 짧은 글이었다.
몸 고상이나 묵주 따위 우리가 몸에 지니는 성물들을 신앙의 매개물로 파악한, 말하자면 성물들의 필요 불가결함과 유익성 등을 간략히 설파한 글이었다. 우리가 몸에 지니고 있는 그것들을 그냥 성물로만 생각하고 표현하는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성물들을 신앙의 매개물이라는 적극적인 의미로 파악하고 설계한 나의 감각이랄지, 그 시선과 관점이 매우 신선하다는 평을 여러 교우들로부터 들었던 것이 글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성문들이 신앙의 매개물일 수밖에 없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예증 표현이 기발하고 진지하다는 말도 들렸었다.
그런데 나는 그 글을 쓴 이후로 더욱 절실히 성물들이 신앙의 매개물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성물들을 몸에 지니는데 따르는 정신 자세라든가 몸가짐 등에 대해서 각별히 신경을 쓰게 되었다. 성물들을 더욱 열절이 몸에 도시고 사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가 성물을 몸에 모시고 행위라든가, 또한 성물을 몸에 모신데서 더러 가지게 되는 신묘하고 각별하고 돈독한 감정들은 그것이 신앙의 원초적 순수와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정녕 성물에 대한 정성과 겸외심 등은 순수한 원초적 신앙의 발로가 아닐 런지….
나는 요즘에 원초적이고 순수한, 어찌 보면 샤머니즘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는 성 싶은 그런 신앙의 형태들에서 지극하고 진솔한 가치들을 재발견하고 더불어 감명을 받기도 한다. 나 자신의 그런 신앙 형태에 대해 야릇한 희열과 놀라움과 각성 따위를 감득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월남에서는 그토록 성물을 몸에 모시려 애를 썼고 성물과 한시도 떨어져 살지 않았던 내가 그 전쟁 마당을 벗어나고부터는 아주 오래도록 몸에 모시는 성물들과 겨의 결별한 채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별로 절실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여…. 그러다가 지난 해 여름 죽음 앞에 거의 다 달아 있는 청년 교우 안드레아의 가슴에서 반짝이는 몸 고상의 어떤 위용을 발견하고 마침내 충격과도 같은 각성을 이루하여 성물에 대한 새로운 성차를 가지게 된 나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성물들과 아주 돈독히 밀착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외출을 할 때는 반드시 묵주를 몸에 지닌다. 깜빡 잊어 지니지 못하고 나갔을 때는 그것을 깨닫는 순간 몸을 돌린다. 바쁜 일이 있거나 이미 걸음을 많이 하였을지라도 반드시 발길을 돌려 집에 가서 묵주를 지니고 다시 나온다. 묵주를 지니지 않으면 왠지 허전하고 불안하며, 그것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야릇한 무게와 더불어 신비한 안온함과 든든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한 느낌은 이제 항시, 또는 간헐적으로 매우 선명하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대외적인 제반 행동과 처신들도 그런 돈독한 감각들에 준하거나 깊이 연대하는 것이기를 희망할 수도 있게 된 성 싶다.
그런데 나는 성물들에 대한 각별하고 첨예한 감각이나 의식들은 물론 단순한 열심에서도 가능하겠지만, 어떤 체험적인 특별한 계기로써 더욱 가능해지지 않을까 문득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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