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어느 외교인 친구로부터 조금은 흥미 있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혼기를 아주 옛날에 놓쳐 버린 나와 비슷한 노총각으로서 결혼을 서두르는 행색으로 한 여자와 사귀어 그런대로 잘 진행을 하였는데, 그러다가 그만 이른바 실연이라는 것을 또 당한 딱한 사정이었다. 그런데 그는 주위로부터 동정과 위로를 받는 것이 몹시 괴로운 중에서도, 「연분 (緣分)이 아니어서 그렇다」…는 말을 듣는 것이 가장 괴롭다는 것이었다. 그러며 그는 연분 또는 인연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이라고 하였다. 남녀가 서로 성실을 다하여 교체 혹은 연애가 원만히 진행되고 그리하여 결합에 이르게 되면 그때 비로소 인연이 있는 것이지, 애초에 연분이라는 것이 있고 없어서 그것에 따라 무엇이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즉 인연은 사람의 노력과 성실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니까 인연을 만들고, 그 만들어지는 연분에 이르기 위해서는 남녀가 서로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최선을 향한,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노력만이 중요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최선을 다하지 않아 교체 혹은 연애가 파국을 빚었는데도 사람들이 연분 없음을 끌어들이며 그 말로 위로를 대신하는 것은 참으로 섭섭하고 어처구니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친구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며 최선의 노력 그 자체부터 인연이라는 것과 결부되는 것이 아닐까? 연분의 있고 없음에 따라서 노력도…하는 생각이 드는 가운데서도 인연은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고 감명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 후배 교우로부터 또 이런 말을 들었다. 그도 연애 같은 것을 하다가 왠지 실연이라는 바람직스럽게 못한 것을 가슴에 안은 형편이었는데 여자가「하느님의 뜻」을 남용한다는 것이었다. 남자의 제반 처지를 살펴 이해하며 의지를 맞추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몰의지(沒意志)로 현실적인 이기와 감정적 판단으로 처신하고서는 거기다가 하느님의 뜻을 갖다 붙인다는 것이었다. 그러며 그는 우리들의 사람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였는데도 하느님께서는 응답이 없으시다고 하는 여자의 말이 참으로 기분 나쁘며 어처구니없다는 것이었다. 그 여자가 진정으로 우리들이 사랑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였는지도 의심스럽다며, 하느님에 의해 만나고 교제를 하게 되었으니까 하느님께 죄스러워 하고 용서를 청하는 마음으로「선언」을 할 수도 있을 터인데 왜 굳이「주님의 뜻」을 동원하는지 모르겠다며 비감스런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나도 과거에 그런 뼈아픈 국면을 경험해 본 터라, 그 후배의 슬픔을 깊이 이해하고 동정하였다. 사실 곡절이야 어떻든 간에 그「주님의 뜻」의 남용은 옳지 못하다는 것에 공감을 한 것이다. 어떤 불가항력적인 장벽이 있지 않는 한 사랑은 그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으로 해서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라고… 현실적으로는 다소 무리가 있다 하더라도 성취에 대한 가능성만 있다면 능히 추구하며 살 수 있고, 그러는 것도 좋으리라고…구하는 자에게 길이 있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지 않는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노력을 기피하는 타성과 현실적인 이기 추구를 스스로 벽을 만들고서는「주님의 뜻」을 내세운다. 하느님도 참 딱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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