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의 부활절은 여느해보다 특별한 의의를 갖고있다. 그하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선포한「구원의 특별성년」즉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원성업을 완수하신후 195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여 특별히 선포한성년이 부활직전인 3월 25일(성모영보축일)부터 시작되어 명년의 부활축일(4월 22일)에 마치는 해라는 점이고 그둘째는 금년이 명년으로 박두한 한국선교2백주년 기념사업을 마무리준비하는 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번의 부활절에 상술한 두가지 측면에 의미의 초점을 두고 몇가지 문제를 제기해 보겠다.
이번의 성년은「구원의 특별 성년」이라는 제호가 부쳐진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인한 구원을 기념하는데 중점이 놓여 진 것으로 보여 진다. 그중에서도 더욱이 부활에 역점이 두어진 것은 이 성년이 83년 부활절 직전에 시작되어 84년 부활절에 마친다는 점에서도 그 취지를 엿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교의 면에서나 교회의 전례 면에서나 부활이 중심이고 정점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한 두가지의 예만을 든다면 사도 바오로는『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I꼬린토15ㆍ14) 라고 역설하였고, 또 사도들과 제자들이 예외 없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으로서 복음을 전과하고 또 그로 인해 순교 치명한 것이 사도행전의 주요한 줄거리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교회 전례면에 있어서도「주일」자체가 부활을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 정해진 날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마사 전례 중에서도 성찬기도 성변화 마지막에『신앙의 신비여』할 때『우리는 주께서 오실 때까지 주의 죽으심을 전하고 주의 부활하심을 굳세게 믿나이다.』하고 신앙고백을 하는 데서도, 바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믿는 것이 아니고 부활을 믿는 것임을 강력히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 신도들이 부활에 대한 굳센 신앙이 과연 확실한가, 구원의 본질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행동이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반성해 볼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구원은 바로 영원한 생명이고, 하느님의 나라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는 장차 완성될 천상의 하느님의 나라만이 아니라, 지금 성취 도정에 있는 지상의 하느님의 나라도 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웠다.』『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소서.』『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라』등의 하느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만들고 키워야 할 하느님의 나라인 것이다. 제2차「바티간」공의회는 교회를 구원의 보편적 성사로 선포하고 있다. 그것은 교회가 구원의 표지를 세상에 드러내는 도구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다시 말해서 교회가 이 세상에 하늘나라의 표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편 구원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신비이고 그것은 빠스카의 신비이고, 화해의 신비이고, 일치의 신비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는 고통에서 기쁨에로, 죄에서 자유에로, 억압에서 해방에로, 죽음에서 생명에로의 과월(빠스카)의 신비이다. 이것이 즉 구원의 신비이고 부활의 신비인 것이다.
오늘의 일반 신도들이 아직도 사후의 천당만을 믿는 단순하고 구복 적인 신앙의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보다 더 참다운 신앙과 구원의 핵심인 부활을 믿고 또 그것을 사는데 모든 초점과 역점이 집중되도록 지도와 교육이 절실히 요구된다. 더욱이 한국에 교회가 전파된지 이미 2백년을 맞이한 이때까지도 아직 우리의 신앙이 젖 먹는 유아기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차제에「주의 부활하심을 굳세게」믿게 하는 방법의 일단으로 하나의 제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바는 부활축일을 좀 더 크게 기쁘게 뜻있게 지내는 방도를 모색해 보는 일이다. 한국 교회의 오늘의 현상은 부활절보다는 성탄절이 훨씬 더 기쁘고 화려하게 지내는 것 같다. 이는 한국이 아직 선교 지역에 속해 있어 부활 시기의 일반적 휴가가 없는 한편 성탄에 대한 해방 후의 세속적 풍습의 도입으로 인한 원인도 있겠으나 교회 측에서도 성탄과 부활을 동격의 축일로 인정해 온 점도 없지 않는 것 같다. 그 일예로서 춘추의 판공성사를 들 수 있다. 연내 한 번 있으면 족할 고백의 성사 (판공성사)가 부활절에만 있어야 할 것이 성탄절에 또 한번 더 있다는 것도 성탄절에 또 한번 더 있다는 것도 성탄과 부활의 비중을 동격시하여 신앙의 부활 중심적 비중을 상대적으로 감소케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차제에 성탄절 판공성사의 존속 문제에 대해 교회 당국의 재고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끝으로 이 구원 성년의 부활에 특별한 은총을 많이 받으시기를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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