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 참으로 늦 소리를 지르며 극터듬기로 문단에 나왔을 때 많은 지기(知己)들로부터 축하를 받은 것은 물론 이려니와 나의 우여곡절 만장(萬丈)한 행로가 紙와 誌上들에 드러나서 자못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많은 술자리에서 많은 이들과 어울려 문학과 인생을 담소하며 때로는 기고만장한 기개를 훔치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술자리에서 고등학교 동창 친구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었다. 그는 어지간히도 술을 탐욕하고서는 나보다 더 기고만장해 가지고 기괴하게 목소리를 높여,
「야, 책을 뭣하러 읽냐! 책 속에 돈이 있기를 허냐 밥이 있기를 허냐! 뭐가 생긴다고 책을 읽어! 너한번 대답 좀 해봐라!」
하고 떠드는 것이었다.
나는 그 친구가 필경 책을 전혀 읽지 않고도 잘 사는 사람들의 그 도도하고 완강한 모습들을 의중에 담고 그런 말을 하리 하는 것을 훤히 짐작하면서도 도대체 무어라 얼른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핀잔에 몰리는 심정이었다. 나는 가까스로 기운을 차려, 너는 그렇게 합부로 쉽게 말하였지만 내가 너의 그 질문에 답변하려면 나는 상당히 진지해져야 하므로 내일 아침에 전화로 대답해 주마고 아주 궁색하게 둘러대고는 서둘러 그 위기의 질곡에서 빠져나와 버렸다.
그리고 나는 알 수 없는 절망과 거대한 장벽 같은 것을 한 가슴 젊어진 채로 집에 돌아와서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내일 아침에 전화로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그저 난감할 뿐이었다. 그의 그 무지 무식한 폭언에 대한 무모한 답변 약속 때문에 내가 잠을 못 이루며 심각하게 의식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이 억울키만 하고, 가슴 속의 얄궂은 절망감만 한정 없이 커지는 것이었다. 그런 내가 다음 날 그에게 들려준 답변은 고작 이런 것이었다.
「세상은 다행스럽게도 자네 같은 사람들만 사는 게 아니야. 그리고 자네가 비웃는 사람들이 역사와 세상을 이만큼 발전시켜 왔다는 사실이 더욱 엄연하네!」
그러나 나는 조금도 마음이 후련치 하면서-. 오오, 가련한 친구.
내 그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 하건만….
그런데 나는 그 친구처럼 신문도 보지 않으며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녕 신문 볼 새도 없이 일이 많고 바쁜 사람들…
밥 먹고 잠자고 TㆍV 보고 술 마시고 밤새 화투를 치면서도 정녕 신문 볼 새가 없는 사람들…. 신문이 때로는 국민을 우민(愚民)으로 만드는 작용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신문만이라도 보고 살아야 하거늘, 참으로 딱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우리 교우들 중에도 많았다. 「가톨릭 신문」을 좀 보랫더니, 바빠서 볼 새가 없다나. 술 마시며 놀고 밤새 고스톱은 치면서도 일주일에 한번 오는 신문을 볼 새가 없었다.
하기야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그렇기도 하겠지…. 또 책 한권 읽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것처럼 가톨릭 신문을 보지 않아도 열심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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