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이를 닦고 세수를 한다. 그리고 성당에 간다. 우리집에서 성당까지는 보통 걸음으로 15분 거리. 저녁 어스름을 밟으며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이를 닦고 세수를 한다. 그리고 성당에 간다. 우리 집에서 성당까지는 보통 걸음으로 15분 거리. 저녁 어스름을 밟으며 천천히 걸음 할 때는 신선한 쾌적을 맛본다. 나른한 즐거움과 미묘한 설레임이 내 가슴에 은밀히 무놀진다. 하루의 낮을 내 나름껏 치열하게 살고, 그 치열한 삶을 하느라 무던히도 고뇌하고 인고하였던 가슴을 안돈시키려 걷는 걸음, 걸음 하는 길이 아닌가. 내가 믿고 따르는 하느님 앞에 나아가 또다시 신선하고 아늑한 쾌적의 공간 안에 몸을 담고 나를 평정시키며 정화시키는 일은, 오늘은 나에게 또 어떤 기쁨과 슬픔과 보람을 안겨 줄 것인가. 내 가슴을 얼마나 허허롭게 하고 그리하여 번창케 하여 풍만케 할 것인가…
저녁 어스름을 거느리고 희뿌연히 서 계시는 성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언제나 나를 맨 먼저 반갑게 맞아 주는 것은 성당 안의 흔쾌한 내음… 내 가슴이 그 흔쾌한 내음과 조우하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는 오늘 다시 이렇게 주님 앞에 나아왔음을, 이 시간 그 모든 것 다 버리고 무엇과도 상관하지 않고 나 성당 안에 초연히 있음을 살포시 안도하며 주님께 감사한다. 더불어 잠시 오늘은 주님께 무엇을 말씀 드릴까…내 마음 바닥에 나름대로의 지향을 그린다. 무엇을 토로하고 용서 빌며 그리고 도움을 청할까…오늘은 그저 다만 무념(無念)의 허허로운 마음이기만을 원할까…진정 무념의 허허로운 마음으로 미사를 지낼까….
이윽고 시작되는 또 하루의 저녁 미사-그러나 나는 입당성가를 부르면서 부터 절실한 고독과 슬픔 속으로 침몰한다. 나의 뼈저린 고독과 슬픔을 토론하는 심정이 된다. 내 삶의 음영이 더욱 질게 나를 사로잡는 듯하여 때로는 내 가슴에 울음이 돋기도 한다. 이럴 때 공동체 성가 9번이며 54번, 58번 등은 어찌나 내 마음을 슬프게 하는지…. 그리하여 나만의 밀폐된 공간에서 고독을 사르면 광막하면서도 울울창창한 원고지 그 사각의 공간에다 신열의 채문을 아로새기느라 한껏 고뇌하였던 가슴은 또다시 아픈 상념들이 무늬지고 더불어 슬픔이 마냥 무놀지는가…
그러나 나는 성당에서 누리는 고독과 슬픔들이 그지없이 좋다. 고뇌와 아픔들을 확인하면 내 가슴에 아로새기기 위해서, 하느님 앞에서 고독과 슬픔들을 투명케 하고 진솔케 하기 위해서 매일 저녁마다 성당에 오는 것이 아닌가…
어느덧 나는 나 자신을 위무하는 마음이 된다. 내 감수성의 미세한 그물에 결려 들어 진종일 운동하고 발화하였던 감정과 사유의 포말을 걷어 내며 내 가슴은 점차 평정의 바다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관유(寬宥)와 사랑과 희망과 감사의 정념이 출렁대는 파도를 타며 내 가슴을 많은 기도를 잉태한다. 아까 낮에 내가 소설을 쓴다니까 그거 해가 지고 밥벌이가 되느냐고 경멸조로 말하였던 어느 고등학교 선생님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책을 뭣 하러 읽고 교회엔 왜 가느냐고 한 고등학교 동창 친구를 위해서도 기도한다.
나에게 전화를 걸어 글이 잘 되느냐고 묻던 김 바오로 형제의 고맙기 그지없던 목소리…그를 위해서도 기도한다.
신부님과 원장 수녀님과 작은 수녀님 그리고 평일 미사 단골 자매님들과 축복을 나누며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어느덧 허허로움으로 충만해진 내 가슴을 주님께 감사하며…
정녕 짙은 삶의 고뇌와 더불어 탈모증을 계속하고 있는 나의 외롭고 허허로운 서른다섯은 평일 저녁 미사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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