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며 치열한 삶을 하고 있는 방, 책상 바로 옆 벽에는 아름다운 패각 공예품이 한점 걸려 있다. 직사각형의 나무를 안에 지어져서 유리를 덮고 있는 그것은 한구석도 흠잡을 데 없이 참으로 섬세하고 정교하다. 중앙에 십자가와 천지창조를 뜻하는 듯한 그림이, 그 좌우엔 忍자와 耐자가 장중하게 문양 되어 자리를 잡았는데 모래알 같은 고 등껍질들과 갖가지 모양의 크고 작은 수많은 조개껍질들과 곱돌들로 정년 조화로이 이루어진 그「뜻 세계」는 가히 신비롭기조차 하다.
보면 볼수록 만든 이의 솜씨와 정성과 노력에 경탄이 가곤 하는 창조적 예술품인 것이다. 진정 나에게는 가장 보배로운…
나는 휴식을 취할 때마다 그것을 감상하곤 하는데 더불어 그럴 때마다 지난해의 부활 대축일을 떠올리곤 한다.
나는 정녕 82년의 부활 대축일과 그날의 안드레아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안드레아는 모처럼만에 거의 탈진한 몸으로 성당엘 왔었다. 부활의 기쁨과 오락과 화창한 봄별도 그와는 무관하였지만…. 미사 후 그는 뜨물 오른 배동 나무 그늘에 앉아 또는 누워서 푸른 하늘로 튀어 오르는 배구공과 환호 소리들을 망연히 바라보며 있다가, 오락의 물결이 잦아진 무렵 나를 불렀다.
다만 오락에만 몰두해 있던 나를…그리고 그는 보자기에 싼 것을 손수 풀어 내게 내밀었다.
내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아름다운 패각 공예품이었다. 나는 나뭇대기 같이 앙상한 그의 손에 들려져서 나에게로 건네지는 그것을 받아 들면서 할 말을 잊었다. 다만 무람없고, 차라리 망연자실한 심정이었다. 고맙다는 말 따위는 정녕 필요치도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안드레아의 그 선물을 들고 성당 언덕을 내려오면서 그가 내게 한말을 떠올렸다 『부활절에 형님께 선물을 하려고…그냥 누웠기 심심해서 만들어 본 것인데 별로 볼품이 없네요.』
나는 가슴속이 뭉클하였다. 그가 회장님이라는 호칭으로 말하지 않고 형님이라고 말한 것이 내게 후더운 정감을 안겨 주면서 더더욱 가슴을 무겁게 하는 것이었다. 그의 거의 절망적인 병세, 처참하리만치 앙상해진 모습, 그를 대하는 나의 비관적인 시선 등을 생각하니 정녕 가슴이 아팠다. 그가 병석에서 어렵사리 몸을 움직이며 그야말로 노고를 바쳐 섬세하고 정교하기 그지없는 패각 공예품을 만들어 오늘 내게 선물하였다니…생각할수록 고맙고 부끄럽고 죄스러워지는 것이었다. 그의 고운 심성과 아까운 재주와 솜씨 때문에 그가 더더욱 가엾어지며…
나는 집에 돌아와 내가 글을 쓰며 치열한 삶을 하는 방의 벽에 안드레아의 그 패각 공예품을 걸면서 또 한 차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가 자신이 회복할 수 없다는 것과 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잔명(殘命)의 시간을 재며 그 잔명의 숨결로 나에게 정표(情表)를 남겨 주려고 처연히 노력하였음이 가슴 가득 느끼어져서…
그 후 안드레아는 백일쯤 더 아주 어렵사리 생명의 불을 켜 들고 있다가, 기름 다하여 꺼져가는 등불처럼 숨을 거두었다. 아름다이 종부성사를 받고 그의 아름다운 죽음과 주검을 어찌 필설로 다 말할 수 있으랴…
나는 그의 임종을 끝내는 지켜 주지 못하였지만, 그가 종부성사를 받은 날은 그와 밤을 함께 하였다. 나는 그와의 그 푸르고 깊고 아름답던 밤을 잊지 못한다.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장중하고 아름답던 그 밤의 숨결을 한 편의 소설로 그려내려고 한다. 췌장암 대 수술 후 당뇨병으로 쓰러진 李 안드레아 28년 짧은 삶의 마지막 모습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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