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성당 마당에는 장미 정원이 있고 철쭉 동산 수십 그루의 크고 작은 향나무 준장미 땅장미 전나무 사철나무 측백나무 무화과 나무 등이 1천6백 평의 넓은 성당 구내를 적당하게 장식하고 있다.
우리 성당 성모 동산에는 라일락, 철쭉, 치자, 줄장미, 무궁화, 향나무, 땅장미, 동백이 성모상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도회의 중심지에 이토록 넓고 조용한 언덕에 자리한 성당이 이 땅에 그리 많지않을 것이다. 20년 전 외국 신부의 풍수지리에 새삼 놀란다. 내일 일도 모른는 나로서는 먼 미래를 보고 성당터를 잡았던 코 큰 신부님의 사려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언젠가 대신학교 철학 강의 시간에 졸면서 들었던 루소의『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근래에 와서 점차 가슴에 와닿는다. 갖가지의 공해에 찌들어 버린 20세기의 도회인들에게는 복음처럼 들리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휴일 도회 근처의 산수가 좋은 곳이면 사람들의 무리로 골짝골짝을 메우게 되는가 보다.
자연! 그렇다. 자연은 인간에게 끝없이 자기를 개방하고 있는 것이리라. 자연의 혜택을 도표로 열거하지 않아도 오늘을 사는 우리는 충분히, 그리고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교육은 10년을 내다보고 하는 것이고 식목은 1백년을 내다보고 하는 것이라고 하던가!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내가 머무르는 곳이면 가능한 대로 나는 나무를 심어 왔고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하고 싶다.
카네이션 동백이 빨갛게 피어 추운 겨울을 내년으로 밀어내며 성당을 찾는 이의 마음들을 밝게 하더니 연이어 라일락이 하얀 미사 수건을 쓴 여인처럼 성모 동산의 성모님을 순결하게 하더니, 이제 철쭉이 빨강 연두 흰 빛으로 성모님의 발치에서 2천 년 전 골고타 언덕에서의 쓰라린 마음을 위로라도 하는 듯 화사하게 성모님을 떠받들고 있다. 곧 이어 땅장미 줄장미가 성모님 동산을 로사리오 (장미 다발이란 뜻) 기도만큼 이나 값지게 매일 매일 새 꽃송이를 드릴 것이다. 옛말에 근묵자흑이라고 했던가, 이와는 반대로 아름다운 곳에서 살면 마음도 아름답게 될 것인가. 세상의 죄악에 때 묻어 가는 나의 영혼, 교우들의 영혼이 어제보다 오늘 더 새롭게 되어야 할 텐데….
성당에 오는, 삶에 지치고 상처받은 영혼들이 성모 동산에 서서-주님께로부터 치유와 은혜를 받지만-평화와 기쁨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내일도 자연을 가꾸련다. 누무를 심고 돌보느라 깜둥이가 되어 버린 모습일지라도 마음만이라도, 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연을 키우련다. 근래에는 외출을 나가도 빨리 성당으로 돌아오고 싶다. 변함없이 사랑 주시는 감실 안의 예수님은 잊어 버릴때가 있어도 반갑게 맞이하고 내손을 기다리는 꽃이랑 나무들이 더 걱정되고 보고 싶은 것은 내 영성의 부족함이라고나 할까?
자연을 가꾸는 것이 이제는 나의 취미 생활이 되어 버렸다고나 할까. 이 땅에 사는 더 많은 사제들이 나와 같은 취미를 가져 주었으면 하는 욕심이 난다. 동료 사제들에 대한 애정 때문일 것이다. 나무를 돌보듯 교우들을 돌보고 봉사해야 할 텐데…
생각은 날래나 육신이 느리니 주님 저의 부족함을 용서하옵소서.
■지금까지 작가이며 태안본당 사목 위원인 지요하씨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이 번호부터는 부산교구 구봉본당 주임이신 김윤근 신부님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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