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창 한나라당 총재가 태풍으로 쓰러진 벼를 세워 묶으며 농민들로부터 피해상황을 듣는 사진과 「동심과 어울린 국회의장」이라는 제목 아내 이만섭 국회의장이 어린이들과 어울려 찍은 사진을 신문에서 보았다.
정기국회가 열려야 할 시기에 야당 총재는 논에서, 국회의장은 어린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은근히 울화가 치미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가요계는 요즘 빅스타 서태지가 검백한 일로 떠들썩하다. 환호하고 열광하다 못해 울부짖는 10대들을 보며 왜 그러는걸까 생각해 보았다. 때맞추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컴백을 선언했다.
『김정일의 반민족적 범죄행위를 규탄하고, 고발하는 2000만 국민서명을 전개하고 민주주의 수호 총궐기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퇴임 당시 그에게는 「국민을 국제통화기금체제라는 치욕적이고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몰아넣은 불행한 대통령」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런데 얼마만인가? 아직도 IMF의 그늘이 채 걷히지 않은 시기에 세상을 향해 그렇게도 당당히 자기 발언을 할 수 있을까?
서태지의 컴백과 YS의 컴백은 어떻게 다르고 어떤 의미를 각각 지니는 것일까!
요즘 코미디계는 구봉서, 배삼룡, 이주일 같은 코미디언이 없다. 그래서 군웅할거시대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YS는 구봉서, 배삼룡이 물러선 코미디계에 그들의 자리를 메우려는 것일까. 아니면 서태지 같은 화려한 컴백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는다. 어느 대중가요의 대목처럼 「세상은 요지경」이라고 조소를 퍼부어야 할까.
아무튼 YS의 말들은 파격적이다. 전직 대통령의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파괴적이고 도발적이다. 웃음이 사라진 시대에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언 기질, 또는 흥생사의 기질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신문의 칼럼에서 『정치면에 YS 관련 보도를 싣는 것은 아까운 지면 낭비」라는 주장도 나왔다.
『기사로서 보도할 가치가 없고 독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지 않으며 일반 독자들의 생활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퇴임한 전직 대통령의 관련 기사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다웠느냐, 대통령답냐하는 것, 더 나아가서 대통령 이전에 인간답냐 하는 것이 아닐까?
할 일 많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얼마전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노벨상 수상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ㅂ려장을 찾아갔다고 한다. 한때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였던 노작가와 3시간 동안 진솔한 대화를 나눴고 그들의 회동 사실은 전세계에 비중있는 뉴스로 전해졌다.
「우리가 어떻게 러시아를 일으켜 세울 것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10년 전 출간한 적도 있는 솔제니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고집불통으로 유명한 그와 대통령은 문학적 향기가 짙은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 이전에 대통령으로서 문화계인사와 격조높은 교류를 한 사람으로 우리는 프랑스의 미테랑 전대통령을 기억한다. 엘리제궁으로 초대하기도 했지만 작가나 철학자들의 집을 집접 찾는 파격을 마다하지 않았다.
미테랑 전 대통령의 이런 문학적 소양을 익히 알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은 그의 사후 완공된 새 국립도서관에 「미테랑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기꺼이 바친 것은 아닐까.
물론 우리나라는 문화적 토양이나 사회적 분위기가 다르다.
9월 14일 타계한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을 전현직 대통령이 조문했다는 보도를 나는 듣지 못했다. 생전의 성품으로 보아 그가 대통령을 만나지도 않았겠지만 원로작가를 찾아갔다는 대통령이 있었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문화가 힘이다. 문화의 세기를 선도하자는 구호는 내걸었지만 문화부 또는 문화관광부 장관이 원로작가의 집을 찾았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다.
푸틴 대통령과 미테랑 전대통령이 문화계 인사와 격조높은 교류를 가졌다는 것은 태풍현장의 농민을 찾아간 일과 어린이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는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의 경우와는 다른 것이다.
대통령도 평범한 자리에 누군가와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고, 흉금을 털어놓고 때로는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떠들썩한 외국 나들이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대통령과는 다른 것이다. 「사람냄새」 나는 대통령의 모습이 아닌가!
사진찍기 좋아하고 , 외국나들이 좋아하고, 퇴임 후에도 거창한 선언을 하며 컴백하기 좋아하는 대통령을 모신 우리나라, 그것이 전직 대통령의 말처럼 『국민에게 불행한 일』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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