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설가 엔도 슈사쿠가 쓴 ‘침묵’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금교령이 내려진 이후 일본에서 일어난 모진 박해와 그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기 위한 순교자, 선교사들 그리고 나약한 신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 끝이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는 개인적인 판단에 맡긴다.
운젠의 유황 온천에 넣었다 뺏다하는 고문, 거꾸로 매달아 놓고 오랫동안 고통을 가하기 위해 귀에 구멍을 뚫는 치밀함 등 일본 가톨릭 역사에 기록된 하나의 사실이다. 과연 무엇이 사람을 그토록 잔인하게 만드는지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덕분에 이 책을 통해서 일본 정부가 행했던 모진 박해와 핍박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5월 15일 나가사키 운젠 순교지 내 메모리얼홀에서 봉헌된 제28회 운젠 순교제에 참가하면서, 순교자를 기리는 마음에는 국경이 없음을 알았다. 15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는 무명의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일본교회 최대 규모의 순교자현양 행사다.
미사에서 강론을 한 오자키 아키오 신부는 피의 박해가 끝나고 평화로운 시기이지만 21세기의 신자들은 자신의 신앙생활을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키오 신부 말대로 피의 박해, 피의 순교로 신앙을 증거 하는 시대는 지났다. 하지만 더욱 무섭고 치명적인 박해가 우리를 괴롭히는지 모른다. 사회에 만연한 물질만능주의로 정신은 피폐해지고, 이기심은 그 끝을 모르고 달려간다. 게다가 성찰과 용서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런 모습에 과연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지 부끄러울 정도다.
한국에서 일본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주님을 위해 살아갔던 사람들. 그들의 모습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비춰볼 때 떳떳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무명 순교자들을 위한 운젠 순교제에 참여하면서 이 글을 읽고 있는 한국의 신자들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당신의 신앙,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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