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씨처럼 맑은 눈으로 황금궁전의 여왕이 된 듯 은행나무 아래를 풍요로이 거니셨던 M 수녀님… 바라보면 언제나 여유롭고 넉넉한 분이다.
컴퓨터에 심한 알레르기 체질이신 수녀님께서는 『불쌍한 수녀님들, 기계 속에서 숨을 쉬고 살고 있습니까?』라며 측은지심의 눈으로 바라보시는 것이 늘 미안하였다.
그런데 오늘, 돋보기 안경을 쓰신 그 수녀님께서도 열심히 가상의 공간을 젊은이처럼 헤매며 몰입하여 계신다. 요즘의 우리의 현실이다. 컴퓨터 앞에서 뒤엉킨 혼란의 소리를 듣고, 두절된 대화의 현장을 보고, 그리고 그 사이버 공간의 위력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이렇게 변질된 언어의 교환, 가상의 지식으로 대화를 하고 사이버 음성을 듣고 전자음의 주파에 귀를 모으고 있다.
문득 하늘을 바라보며 가을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끝나지 않을 듯한 노동과 수고와 무더위가 장거리 경주자처럼 지루하게 숨쉬고 있을 때, 어느덧 화려한 잔치를 준비한 계절이 저만치 옷깃을 흔들고 있다.
이 가을에 우리는 황금의 성에 사는 여왕들이 되어야겠다. 고달픈 가상의 공간에서 푸른 소나무 향이 나는 가을로 일탈해야겠다.
황금의 옷, 이 눈부신 아름다운 옷조차 바람 곁에 내맡기며 쉽게 훨훨 벗어버릴 수 있는 나무처럼 비움을 배워야겠다.
이 가을의 나무는 풍성한 미래의 꿈을 땅속 깊은 뿌리에 간직하며, 마지막 살아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에도 연연치 않는다. 이 의연함의 겸손을, 계절의 겸손을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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