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품성사를 받고 몇 달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지금도 항상 사제직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며 살고 있지만 그때는 더욱 사제 생활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해서 긴장하고 자신감이 없었으며 그저 풋 열심으로 살았다. 하루는 새벽 미사를 드리는 도중에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미사 중에 갑작스레 아픈 배라서 병원에 갈수도, 앉아 진정시킬 수도 없는 딱한 처지에서 참느라 비지땀을 흘리면서 끙끙거렸다. 겨우 복음을 읽고 나서 교우들에게 묵상을 하게하고 화장실에 가려는데 감사롭게도 배의 통증이 멎었다.
하느님께 대한 감사로움이 배가 아픈 만큼이나 컸다. 미사를 계속하면서 마음속으로는『하느님 제발 미사가 끝날 때까지 내 배를 진정시켜 주시면 오늘 좋은 일 많이 하겠습니다.』
『당신은 바람도 바다도 조용케 하시는 분이시니 제발 내 배에 평화를 주소서』하면서 주의 기도를 바치고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다. 기도 덕분인지는 몰라도 내 배에는 평화가 왔다. 그런데 일분도 못되어 다시 배의 통증이 해일이 일듯이 시작되었다. 영성체 부분에서『보라! 천주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 되도다.』하면서 마음속으론『보라. 당신은 내 배를 진정시켜 주시는 분이시니 이 성체를 받아 모시는 내 배가 복되게 하소서』하면서 주님께 간구했으나 나무아미타불이었다. 흔히 고통스럽거나 위기의식을 느낄 때 주님께 매달리며 기도하던 평소의 나의 기찌지로(소설「침묵」에 나오는 인물)같은 신앙이 또다시 드러났다. 주님은 나의 엉터리 같은 기도를 무시해 버려셨는지/나처럼 새벽잠이 많아서 아직 일어나시지 않아서 내 기도를 못 들으셨는지/아니면 나같이 철부지 기도를 하는 자가 너무 많아서 감당을 못하셔서 그런지 묵묵부답이었다.
하는 수없이 교우들에게 묵상을 하게하고는 급하게 제의실에 들러 제의를 던지다시피 벗고는 내 방으로 뛸 수도 엉금엉금 길수는 없는 딱한 상태에서 서둘러 갔다. 겨우 위기는 모면했으나 이게 무슨 꼴이람! 「제의실 옆에 화장실 하나 두면 무슨 죄라도 된단 말인가! 」「불의의 변을 당하는 신부가 비단 나뿐이란 말인가! 」엊저녁에 먹은 빌어먹을 생선회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나중에 듣자 하니 교우들은 갑작스레 창백하고 긴장된 모습으로 미사를 드리는 나를 보고 불안했는데 성체를 나누어 주기는 커녕 묵상을 하게하고 어디론지 사라져 버려서 많이도 놀랐다나! 그래서 하라는 묵상은 않고 묵주 신공을 바쳤다나! 나중에 알고 보니 불의의 사고(?)로 미사중에 변을 당한 신부가 몇이 있었다니 얼마나 난처했을까! 그래도 「미사 중에 변을 당하지 않은 내 배가 복되구나! 」생각되었다. 그 후 내가 전임되어 가는 곳마다 제의실에 화장실이 있나 하고 두리번거리지만 아직까지 어떤 성당에서도 화장실을 발견 못했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신부나 수녀를 하느님처럼 여겼고 그들은 먹기는 하나 화장실에 안가는 번데기 같은 사람으로 여겼는데…
말 못할 사제의 고민은 많기도 해라「주여, 앞으로는 미사 중에 설사하지 않는 복된 배가 되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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