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어떤 낯모를 부인이 사제관 문을 두드렸다. 이야기인즉 자기는 가톨릭 신자로서 결혼한 지 십년이 되었으며 현재 남편과 이혼을 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신부님의 의견을 듣고자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신자가 아니라고 했다.『왜 이혼을 하려느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아내인 자기보다 술을 더 좋아하고 아내인 자기보다 회사일에 더 관심이 많아서 도저히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남편의 허물을 시장 바닥 물건을 늘어놓듯 늘어놓았다. 그래서 나는 인내를 갖고 듣고 난 후 『이혼을 하고 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혼자 살겠다.』고했다. 나는 그녀에게 최선을 다해서 위로와 활력을 주고 돌려보냈다.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측은하게 보였고 비를 흠뻑 맞고 갈 곳이 없어 방황하는 가련한 슬픈 사슴을 보는 듯했다. 아마 이와 비슷한 경우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부님들이라면 일 년에도 여러 차례 경험하는 가슴 저미는 체험들일 것이다. 가정이 파괴되고 사랑에 실패하고 있는 가정이 세월이 갈수록 심각하다고 오늘의 매스컴들은 통계를 가지고 일을 모아 한탄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는 몇 년 전에 메리지 엔카운터 주말 강습을 받고 부부에 대해서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으며 그 이후 부부에 대한 관심이 놀랄 만큼 많아졌다.
부부는 지나간 그 어느 날 혼인이라는 만남을 통해서 둘이 한 몸, 한 마음이 되는 크나큰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모르는 신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식은 지식으로 남아 있고 현실을 살아 가는데는 지식과 현실이 달리하고 있다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결혼을 하고난 후 한때는 배우자가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와도 비길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건만 세월이 흐를수록 가슴에서 나오는 뜨거운 사랑은 식어 들고 머리에서 나오는 이성적인 사랑이 계속되다가는 그만 환멸을 느끼고 배우자의 가치와 존엄성을 발견하기 보다는 약점을 더 많이 보게 되는 것이 오늘날의 부부 관계인가 싶다. 결혼을 할 때의 사랑보다 결혼을 하고난 후의 사랑이 더 크고 아름다와야 하는 것인데, 그래서 결혼 후 1년보다 10년, 10년보다 20년이 더 부부의 사랑이 크고 성숙되어야 하는 것인데, 반대로 그 사랑이 줄어든다면 이것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결혼은 나의 필요(행복)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필요(행복)를 위해서 하는 것이어야 하리라.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나의 필요 때문에 결혼을 하고 있고 또한 결혼 생활을 영위해 가고 있으니 언젠가는 욕구불만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지난 가을 몇몇 신부님들과 제주도를 잠깐 다녀온 일이 있었다.
그때 제주도 곳곳에서 눈에 드러나게 띄었던 것은 신혼부부들이었다. 이 나라의 수많은 선남선녀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제주도는 청춘의 나라, 사랑의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잠깐 들렀다가는 여행자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시월의 파란 하늘을 닮았으며 그들의 눈은 빛나고 있었으며 그들의 입술에는 기쁨이 담겨 있었으며 그들의 걸음걸이에는 희망이 담겨져 있는 듯 했다.
제발 그들의 사랑이 오늘에 머물지 않고 영원토록 변치 않고 성숙되기를, 어둠에 깔린 우리네 가정들을 밝혀 주기를, 병들어 가는 세계의 가정들을 치유해 주고 구원하는 새로운 힘이 되어 주기를 빈다는 마음으로 그들의 앞날을 빌었다.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사랑하기 위해서 산다.』는 어느 신부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렇다. 사랑 없는 삶은 열매 맺지 못하는 과일나무가 되고 말 것이다. 주여, 당신은 그 옛날 가나 동네에서 물을 술로 변화시키면서 혼인을 축복하셨으니 오늘 우리의 부부들에게 미움을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축복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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