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잘 알 수 없는 부인병으로 수술을 받기위해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해야했다. 그래서 병원생활에 경험이 있는 동생의 말대로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특히 외롭지 않게 4인용 병실에 들었었는데 공교롭게도 한주일 사이에 차례로 세 사람이 퇴원을 하고 보니 아늑했던 분위기가 썰렁하니 허전했고 온통 하얀 벽과 침대가 새삼스럽게 부담스럽고 섬뜻한 긴장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그 순간은 잠시뿐 벽에 결려있는 십자고상을 바라보노라니 이를 데 없이 평온한 마음이 되고 만다.집에서 몇 번씩 주님을 의식하며 고상을 바라보던 때와는 달리 지금 이렇게 넓다란 병실에서 나 혼자 침대에 누워 주님을 올려다보는 마음은 무어라 형용하기 어렵다.
따사로운 햇볕과도 같이 병실을 비추시며 아주 가까이 현존해 계실 것만 같은 느낌이다…병실 구석구석 내 눈길이 멎는 곳마다 주님은 그곳에서 초라한 내모습을 내려다보시고 능하신 손으로 잡아주실것만 같은 환희가 애타게 마음에와 부딪힌다. 고요와 침묵만이 흐르는 이순간은 끝없이 주님과 대화하고 싶은 심정이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어 떼도 써보고 응석도 부려보고픈 촉촉한 행복에 젖어본다. 머리카락이 몇 개인지조차 알고계시는 하느님이시니 지금의 나의 마음 다 헤아리고 계시리라.
한가로이 비가 내리는 밖을 내다보면서 영육간의 싸움으로 마치 한차례의 전쟁을 치르고 난 것처럼 어수선했던 지난 한 주일을 생각해본다. 늘 몸이 고달픈 상태였으니까 약간의 이상이 생겨도 언제나처럼 약한 탓으로만 여겼고 이번 경우도 흔히 말하는 갱년기 장애려니 했는데 의사선생님의 뜻밖의 말씀을 듣고 놀라고 당황했었다. 그러나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술을 받기위한 준비를 했고 어머니를 위시해서 집안 식구들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수술을 시작해서 회복이 되기까지 8시간동안을 수술실 복도에서 마음 졸이며 잠시도 형제들과, 내모습이 애처로워 기도하며 밤을 새웠던 남편이 더없이 고맙기만하다.또 나를 위해 교우ㆍ형제들이 많은 기도해주리라 생각하니 외롭지만은 않았나보다.
선천적이라고나 할까 몸이 너무 약하니까 자연 신경과민일수밖에 없었던 내가 그런대로 침착하게 나의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모든 일들을 주님께 의탁하면서 나와함께 계심을 믿었기에 가능했고 따라서 빠른 회복도오지않았을까…
가만히 묵주를 쥐어본다 내가 아는 다정한 얼굴들이 스친다. 생존경쟁이라는 죄의 굴레에서 매일의 삶을 이어가고 있지만 주님의 본의대로 살기위해 노력하는 순박하고 가난한 마음들을 모아서 주님에게 올리고 싶다. 또 어쩔 수 없는 현실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삶의 고뇌 또한 당신에게 맡겨버리고 싶어진다. 감사하기보다는 불만이 더컸던 모순투성이인 마음들을 주님 안에서 완벽하게 돌려받으련다. 이러한 신앙의 의지가 이토록 내 마음에 튼튼한 지팡이가 되어있을줄이야…그동안 나를 보살펴주시고 지도해 주신 선생님과 간호원들에게 감사드리고 잠시나마 서로의 고통을 나누며 위안이 됐던 병실 형제들의 빠른 쾌유를 위해 기도드린다.
메말랐던 내 영혼에 촉촉히 물을 품어 주신 주님 영광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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