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파발쪽으로 이사하고 나서 산뜻한 새벽 미사를 가족과 함께 가는 일은 참으로 신선한 느낌을 갖게 한다. 요즘은 방학 중이어서 매일이 일요일 같은 아이들이지만 늦잠을 자겠다고 투정부리는 것들을 깨워 세수시키고 각자의 기도서다 성가집이다를 챙겨 문을 나서자면 별스럽게 단란함이란 것도 느끼는 것이다.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다. 구파발의 내 집은 싼 집값에 상응하기라도 하듯 남들처럼 높은 담장도 가시철망도, 도저히 열 수 없을 것 같은 거창한 철대문도 없는 단층의 비슷비슷한 집 2백여 채 가운데 하나다. 다른 집들도 대부분 그렇지만 빈 공간에는 꽃나무를 심어 놓기도 하고 채소도 가꾸고 있다. 담장도 없고 대문도 없는 집들이 그런 꽃밭 속에 그림처럼 들어서 있어선지 사람들의 인심은 말할 수 없이 훈훈하다. 여자들은 이웃다운 이웃이며 남녀가 인사를 주고받는 일도 종종 목격된다. 도둑도 없다고 한다. 여름에는 창문이고 뭐고 죄다 열어놓고 자기도 하는데 지금까지 별일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개방사회 혹은 열린사회가 갖는 인간다운 삶의 표본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여기에 도둑과 강도와 살인 같은 범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면, 어떤 독선과 지배라는 전체주의식의 강력한 바람이 불어오면 사람들은 아마도 담장을 높이세우고 대문을 튼튼하게 달고 말 것이다. 그래서 훈훈한 인심은 사라지고 반목의 눈을 번뜩일 가능성이 짙다.
아직은 그런 일은 없다. 어떤 계급도 없고 남의 것을 훔치는 추악도 손을 내민 사람도 들락거리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이런 속에서 일요일 아침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이 오밀조밀 모여 앉은 구파발 성당으로 올라가노라면, 숲속의 새소리, 아랫동네의 더 없이 서민적인 풍경과 함께 마냥 축복받은 아침처럼 즐겁다.「루르드」의 동굴과 같은 모양의 동굴과 성모像. 이상한 모양으로 선 성당. 키가 크고 언제나 잔잔한 미소로 맞는 수녀님 한 분. 그리고 화려할 것 하나 없는 본당의 내부-
이런 것들이 또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거기 앉은 사람들이 또한 아무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전에 역촌동 성당에 다닐 때는 늘 편안하게 대해주며 『오, 베드로 왔어?』하던 金昌錫 신부님이 없으면 늘상 불안한 마음이었다. 화려함, 고상함과 잘난 사람들 사이에선 늘상 소외감을 느껴온 탓 때문에, 역촌동성당이 주는 그 자유분방함은 나로 하여금 기가 죽게 했던 모양이다. 역촌동성당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섞여있지 않은 건 아니지만 성당 전체 분위기가 그랬다. 그러나 구파발 성당에 오자마자 나도 아내도 아이들도 다들 신들이 나 있는 것은 이곳의 그 소탈함, 소박함 때문이라고 생각도 된다.
훈훈한 인정과,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기도하면서 사는 사람들 가운데 살게 된 것도 축복이라고 나는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큰 아이 둘은 여름방학을 맞고도 바닷가로 바캉스 떠나자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이곳 사람들이 아무도 신이 나서 떠나지 않고 나무 그늘에 웅기중기 앉거나 창문들을 활짝 열어놓고 뜨락에서 스며오는 풀냄새를 맡으며 편안하게 여름을 나고 있기 때문이다. 30도를 웃도는 요즈음에도 『더우면 찬물 샤워나 하면 시원한데요 뭘』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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