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밤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빛나고 제법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대는 한적한 분위기의 살평상에 앉아 있노라니 라파엘 자네와의 다정했던 지난날의 추억들이 떠올라 나의 가슴은 온통 소중하게 간직해오던 무엇을 잃어버린 것 같은 아쉽고 허전한 心氣로 가득 메워지는 것 같구려.
지금 이 순간도 당시와 별반 다름없는 신앙적 정분을 지속해오고 있는터라 수도원 입회를 눈앞에 둔 자네이고 보면 나의 그러한 감정은 결코 여린 마음에서 막연하게 움트는 값싼 感傷만은 아닐 것 같네. 어쩜 인간으로서 충분히 있음직한 감정인 것 같아.
평소엔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다가 달포 전 우연한 私席에서 돌연 입회 의사를 확고히, 그리고 당당하게 표명했을 때 나는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하는 엉뚱한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네.
그 사실이 알려지자 주위에서도 자네의 처지에 비추어 온갖 턱도 없는 추측들이 생겨나고 또 다소간 못마땅한 표정들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었지만 그러나 얼마 후 자네의 입회 동기가 결코 일시적 短見이 아닌 여러 날의 신중한 생각을 거듭한 끝에 이루어졌고 또 순수하다고 수긍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네. 아니 근본적으로 주님의 부르심이 있기 때문일걸세.
라파엘! 돌이켜 보면 나는 자네의 덕분으로 오랜 세월 굳게 닫혔던 신앙의 창문을 열게 되었고 이젠 마음껏 호흡하며 평화롭게 지내는 자신이 되었지… 아마 라파엘 자네의 간곡한 기도와 깊은 사랑과 관심으로 이어진 회두의 따뜻한 손길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지척의 거리에 있는 성당이 이방지대처럼 아득하게 느껴지고 있을걸세-.
재작년인가 텁텁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나의 올바른 신앙을 위해 건넨 忠告의 말귀 하나하나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울리는 것 같네.
나의 신앙의 이정표가 된 그 忠告들은 하나의 좌우명으로 마음속에 새겨 두겠네.
라파엘, 태중교우로서 그동안의 모범적인 신앙생활과 착하고 성실한 인간성을 생각하면 어려운 수도자의 길이지만 꿋꿋하게 나아가리라 확신하네.
항상 건강하고 또 우리 모두의 소박한 소망대로 참된 수도자가 되길 자네를 아껴온 선배로써 신앙공동체 안의 형제로써 그리고 본당청년 레지오를 대표해서 간곡히 당부하네.
주님! 라파엘 형제에게 보다 큰 은총을 내려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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