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다 바쁘게 살고 있다. 생각에 잠겨 자기 자신을 성찰하거나 하다못해 멍하니 앉아있지도 못하게 한다. 내가 바쁘지 않으면 바쁜 사람들이 나의 모든 몫까지 아귀아귀 먹어버릴 것처럼 다들 바쁘게「설치고」있다. 혼자 생각에 잠겨 있도록、혹은 멍하니 앉아있도록 놔두지도 않는다는 말이다.「생각하므로써 존재한다」는 데까르트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 우리는 목하 바쁘므로써 존재하는 것 같다.
이런 바쁨 속에 이리저리 쫓겨 다니고 수없이 임기응변하고、그리고 머리를 斷續的으로 굴려대다 보면 나중에 남는 것은「無念無思」그것일까? 시쳇말로 도사라도 된다는 말일까? 천만에다. 일하는 로보트나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인생에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있고 쉬지 않으면 안 될 때도 있어야하는데 지금 우리는 그렇지가 않다. 쉴 새 없이 달리도록 강요한다. 분위기가 그렇다. 자아를 잃어버리도록 주변에서 마구 밀쳐대는 것이다.
「지하철타고 일하고 잠자고」라는「빠리」의 속어가 있다. 샐러리맨들의 자조에 찬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일찍 퇴근해서 가족과 즐기고 독서하고 주말이면 멀리 차타고 나가「위크엔드」를 즐긴다. 지하철에서 책도 읽고 2시간동안의 점심시간 중에는 까페에 앉아 커피 한잔이나 맥주 반병을 시켜놓고 생각에 잠길 수 있다. 극도의 개인주의가 자유와 결부되어 어떻게 보면「방만한 인생」들을 영위하고 있는 것 같은 그들은 만사가 순서며 기다림이며 자기 위주다.
외국인들이 우리의 서울을 보고「활기에 차있다」는 표현을 잘 쓴다.
이 말을 듣고 혹자들은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렇게 기분이 좋지는 않았었다. 그들이 이 속에서 산다고 할 때 그 활기는 견딜 수없이 바쁜 생활전선이라는 사실에 놀라 머리를 흔들고 말 것이다.
인구는 많고 자원은 한정돼있고 땅은 좁고 그리고 세계는 급류처럼 흘러가고 있는 속에서 잘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분수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는 논리는 아주 타당하다. 많은 사람이 능력 이상으로 일해서 기술의 발달、수출의 확대로 경제적 안정을 구가하고 우리가 60년대의 구호였던「잘 살아보세」와 합일되어 마음이 착한 이들로 평화롭게 산다면 실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바쁘게 땀 흘리며 일한 보람의 과일은 꿀맛인 것이니까.
그러나 이 바쁨은 지금 어떤 나쁜 증세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은 각박해지고 남의 뒤통수치기를 떡먹듯하고 도둑이 큰소리치고 남의 발을 밟고도 표정 하나 까딱 않을 정도의 이기적이고 세상엔 잘난 사람 투성이고 타인에의 존경도 흠모도 깡그리 없어져버렸다.
세속적인 욕망을 채우는데 다들 흡사 혈안이라도 된 듯하다.「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종점이 없다고 했다.
이 세속적 욕망의 충족은 아주 다급하고 이기적인 속도와 방향으로 넓게 확산돼 간다. 이와 함께 우리의 머릿속은 텅 비어 가거나 욕구의 덩어리、그 불어나는 숫자에의 환상으로 가득 찬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들 다음 세대、아니 우리들의 아이들은 어떻게 된 사회를 살아갈 것인지…
그러나 당장에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 어느 날 갑자기 이「바쁘다 바빠」하는 관념에서 일탈해 버렸을 때 우리 가운데 혹시나 줄이 끊어진 연(鳶)처럼 홀라당 나자빠지는 사람들이 무수히 쏟아질 수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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