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대한 북괴의 폭력은 이제 그 한계를 넘어섰다. 국가원수를 지목한 공격, 정부에 대한 도전, 국민에 대한 기만과 모욕은 일찍이 저질러져왔고 지금은 몰염치한 국제정치 질서의 파괴와 문명사회에 대한 비양심적 배반에 이르렀다.
한국과 버마는 지금 인류의 양심과 세계의 평화로운 질서유지라는 차원에서 이번 문제에 임해야 마땅하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이 참사에 우리는 잠시 분노 인내 화합이라든가 혹은 응징 성토 등으로 나타나는, 일시적인 반응을 멀리하고자한다.
지금 우리에게 누가 소감과 심정을 묻는 자가 있다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고문이다. 이 분노와 울분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성토와 응징은 이런 변을 막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며 그 어느 쪽도 스스로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미친개는 몽둥이로 다스리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저들은 개도 아니면서 개보다 더한 광란을 피우는 동족이니, 잡초보다 장미 썩는 냄새가 더 고약하듯이 위대한 인간성의 타락이 주는 환멸과 곤혹을 씻을 수 없는 상처처럼 안고 우리는 지금 인류역사위에 인간구원의 횃불을 밝혀야 하는 고독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 폭력집단과 직접 교전한 국가들 가운데 공산화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는 우리 대한민국뿐이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이 시대의 세계인류 앞에 소위「프롤레타리아」폭력혁명의 진면목이 무엇이며, 그들의 위장된 평화전략전술의 교활한 허구성과 비인간적 파괴의 잔학성이 어떠한 것인가를 피로써 체험한 생생한 증언을 할 자격과 의무를 가진 증거자임을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세계는 우리가 지금도 버마에서 저들의 만행을 증거함을 주목하고 그 체험을 함께 나누는 것이 진실을 바로 알고 세계를 평화롭게 이끄는 인류애에 조응하는 것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러한 까닭에 먼저 버마정부가 진실에 충실하기를 촉구하며 진실을 밝히는 용기를 갖기를 바란다. 「아웅산 묘소」사건에 대해 버마는 온 인류 앞에 진실을 용감히 증언할 증언대임을 자각해야 한다.
파급효과를 노리는 기회주의적 태도나 이해관계를 의식하는 타산적 자세로는 기만과 물리적 폭력을 극복하지 못한다.
교활한 거짓은 오히려 우직한 진실로 극복되는 법이다.
우리는 버마의 조심스러운 중립주의적 노선을 이해한다. 그러나 거짓위에선 그 어떤 길도 역사의 참된 진로가 될 수 없다. 거짓에 삶을 바라는 자는 죽을 것이며 참에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진실로 살게 될 것이다. 이미 밝혀진 정황이 주는 심증을 백일하에 내놓을 실제적 능력과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는 용기로 버마는 이번에 불행하게 겪는 국제적 수치에서 당당히 벗어나 오히려 세계를 진실로 이끄는데 자랑스럽게 기여하기를 바란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자 한다. 어쩌면 인류가 파멸할 위험과 긴장 속에 이 세대가 당면한 동서의 갈등과 마찰이 왜 하필이면 우리민족 안에서 이토록 첨예화되고 있는가! 이 시대의 인류가 앓고 있는 남북문제의 깊은 질곡을 우리는 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강대국 간의 타협으로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설정해 놓은 분단의 장벽을 우리는 왜 오히려 더 깊게 해놓고 있는가!
우리는 이러한 당면과제를 지금 사실대로 보며 진실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풀어가고 있는지를 반성해야한다. 그리고 이 극복해야 할 민족적 과제를 소아적 편견으로 누구도 이기적 기회로 삼지 못하게 해야 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이 피 맺힌 시련과 고뇌의 체험을 세계적 체험으로 공감하여 승화되도록 지극한 성실성으로 세계 인류의 공감대를 넓혀 가야 하겠음을 통감한다.
국력은 물리적 힘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물리적 힘에 굴복함은 기실 먼저 정신력의 굴복임을 알아야한다. 「신라」가「당」에 맞섰던 힘은 물리적 힘이 아니었음을 당시의 당나라 장수가 그의 황제 앞에서 고백했었다.
우리는 우리 조상인 신라인이 당에 대항했던 그 기개 높은 애국심이 통일을 가져왔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진리와 사랑의 힘은 핵무기로도 왜곡, 파괴 시킬 수 없다. 인류가 만약 핵이라는 물리적 힘에 파멸한다면 그것은 기실 진리와 사랑을 먼저 포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확신에의 신뢰에서 새 인류를 위한 희망이 싹틀 수 있다. 모든 인간적 기대가 무너진 뒤에 비로소 그리스도적 희망이 밝게 비친다. 우리의 103위 복자가 이 국난의 시대에 시성 승인된데 대해 우리는 깊은 시사를 받으며 자기성찰의 용기를 가져야한다.
끝으로 세계의 모든 신앙인들께 인류가 참으로 평화와 사랑 안에 살 수 있도록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청하며 모든 자유세계는 우리를 위로하려 하지 말고 이 비극의 참뜻을 공감해주길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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