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부님께서 주재하시는 모임에 참석하기 위하여 성당으로 가던 중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성당문을 들어서려는 순간 왼쪽 담모퉁이에 남루한 옷차림으로 고개를 잔뜩 땅에 떨구고 힘없이 앉아있는 20세 남짓한 청년이 시야에 들어왔다.
회의 시간이 임박해왔지만 그런 그를 도저히 그냥 외면할 수가 없어 우뚝 걸음을 멈추고 몇 발치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곤 자세히 뜯어보니 해어진 옷 사이로 삐죽이 나온 뼈며 체구를 보니 며칠씩이나 굶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초췌한 몰골이었다. 『이봐! 청년 고개를 들어봐!』
그러나 여전히 고개를 떨군채 묵묵무답이다. 어깨를 가볍게 치며 몇번이고 불렀을 때 겨우 고개를 들어 창백한 얼굴에 초점없는 눈망울로 망연히 쳐다보곤 다시 푹 고개를 수그렸다.
아마 연고도 없이 이곳 저곳 정처없이 부랑하는 걸인같았다.
아무리 자기밖에 모르는 利己主義가 팽배하고 사랑과 인정이 고갈된 각박한 세태라고 하지만 이렇듯 보호가 긴요한 무의탁 걸인을 길가에 버려진 헌신짝처럼 방치할 수가 있을까?
그렇다고 옛날처럼 걸인이 득실거리던 시대도 아니고 경제발전에 따른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걸인들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한 현실이 아닌가.
이런 저런 상념과 더불어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동정심과 측은한 생각을 주체할 수가 없어 인근 가게에서 먹을 것을 사가지고 와 건네주었더니 말없이 받아쥐곤 금방 입으로 가져간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단 한숨에 먹어 치웠을까? 그가 빵을 먹는 동안 몇 마디 물어보았지만 언어장애까지 겹쳤는지 도시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침 몹시 기다리는 표정으로 성당 안에서 바오로가 나왔고 이어 신부님이 나오셨다. 신부님께선 그 같은 광경을 목격하시곤 곧바로 다가와서 그에게 몇 마디 질문을 던졌으나 역시 아무런 대답도 않고 물끄러미 쳐다보다간 이내 고개를 묻어버린다.
신부님께선 무언가 잠시 생각하시다가 옆에서 있던 바오로에게 파출소에 데리고 가서 희망원 수용을 의뢰해 달라고 부탁했고 바오로는 곧 쓰러질듯 가냘픈 그를 부축하여 파출소로 데려갔다.
그러나 되돌아온 바오로는 직원의 기피하는듯한 태도를 설명하며 분개했다.
격무에 시달리는 경찰관이라 그만한 짜증은 있을 수 있겠지…그렇지만 그 자의 선처를 기대하며 회의장으로 갔다. 그런데 어제 바오로가 용무를 마치고 귀가하는데 그 청년이 파출소 옆길 모퉁이에 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앉아 있더라며 苦笑를 지었다.
비록 가진것 없고 의지할데 없어 뭇사람들로부터 백안시당하는 가련한 처지의 청년이지만 그도 엄연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보장되어야 할 것이고 따라서 따뜻한 보살핌이 있어야 할진대 귀찮다고 해서 다시 길거리로 내쫓는 경관이나 하루 수백명이 왕래하는 길목이건만 눈길하나 주지 않는것은 우리 사회가 너무 봉사와 희생에 인색한 탓일게다.
예수님의 한량없으신 인간애를 한번쯤 음미해보자.
그래서 구호만의 사랑이 아닌 조그마하나마 불우한 이웃을 위해 참된 온정을 베푸는 진정한 인간이 되자. 그것은 곧 자신을 위한 길이며 또 天上의 주님을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일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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