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순교복자 103명의 시성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한국교회 당국에서는 이 시성에 발 맞추어 그들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신도를 비롯한 모든 이에게 그들의 업적을 따르도록 배려해야할 책임을 지고 있다. 이러기 위해서는 우선 완벽한 한국 순교자 103명의 전기가 간행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 순교자들에 관한 전기가 몇 편 나와있는 바이다. 즉 아드리엥 로네가 지은「한국순교복자 79위전」은 1839년과 1846년의 박해 때에 순교한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복자들의 신앙과 생애를 서술해 주고있다. 또한 1866년 이후의 박해에서 순교한 24명의 복자들에 관해서는 줄리오 단떼가 지은「한국신앙의 씨앗들」이 있으며 이병영(李丙泳)이 저술한「어둠을 헤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밖에 선교사들의 전기 및 몇몇 한국인 순교자의 전기도 간행된 바가 있다.
그런데 이상의 전기들에서는 몇 가지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그 첫번째 문제점으로 기본자료의 제한된 이용을 들 수 있다. 이 전기들은 주로 서양어로 쓰여졌거나 번역된 자료만을 사용하여 저술되었다. 즉 한글이나 한문으로 작성된 많은 자료들을 거의 참조하지 못하였으므로 순교자 전기의 편찬에서도 완벽을 기할 수가 없었다.
두번째 문제점은 기존의 전기가 작성될 당시보다 오늘날의 신학사조가 크게 발전한 데에서 발생되고있다. 과거의 전통적인 안목이 아닌 새로운 시대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발전된 신학사조에 의해 그들의 생애와 신앙이 재조명되어야하는 것이다. 세번째 문제점은 전기의 표현방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존의 전기들은 대부분이 외국인의 눈과 정서에 의해 여과된 한국 순교자들의 모습을 전하고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한국인의 정서와 감정에는 동떨어진 표현 및 묘사들을 우리는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순교자의 전기가 편찬되어야한다. 이 순교자 전기의 편찬에는 마땅히 다음과 같은 점들이 참조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순교자의 생애와 신앙은 이성적 차원에서 먼저 검토되어야한다. 신도들의 감정에만 호소하는 저작방법은 이미 한물이 지나간 형식이며, 이성에 기반을 둔 감정의 표현만이 신도들이나 그밖의 사람들에게 참답고 지속적인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순교가 발생했던 당시의 정확한 시대배경을 이해해야한다. 순교자를 드높이기 위해 한국문화의 발전단계를 지나치게 열등화시켜서는 아니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순교자들에게 잔인한 죽음을 강요했던 당시, 아직도 세계교회의 일각에서는 마녀재판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지구상에서도 노예에 대한 비인간적인 학대나 인디안 사냥이 진행되던 때임을 동시에 기억해야 한다. 셋째로, 영웅주의의 극복이 필요하다. 순교자들은 분명 지극히 평범했던 인간으로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 우리의 이웃이었다. 이들을 지나치게 신비화하거나 영웅화하여서는 현대인의 생활감정과 사유방법에 맞지 아니할 것이다. 영웅주의는 19세기 사회사상의 잔재에 불과함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이 20세기 후반기의 사회임을 감안하며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방법에 의해 순교자 전기를 편찬해야 한다. 넷째로, 영웅주의의 부산물인 흑백논리적 서술방법을 피해야 한다. 순교자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박해자나 배교자를 일종의 반영웅(反英雄)으로 묘사하고, 그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전기의 표현에는 문제가 따를 것이다. 박해자와 배교자들도 무지와 허욕(虛慾)의 희생자였다. 지난날의 순교자들은 이 희생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죽어갔음을 동시에 기억해야 한다. 다섯째 오늘날의 신학사조와 교회의 가르침을 올바로 표현할 수 있는 전기가 되어야 하며, 집필자료의 광범위한 수집활동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요구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순교자 전기의 편찬은 특정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 지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가칭「한국순교자 1백3명 전기편찬위원회」의 발족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 위원회는 주교단 산하의 특별기구로 조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신학자ㆍ교회사학자ㆍ역사학자ㆍ문학자 등 객관적으로 보아 타당성이 있는 전문인들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우리 교회는 이 위원회에서 편찬한 책자가 진행될 때까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절판된 기존의 전기들을 다시 간행하고, 번역이 안 된 순교자의 전기를 번역 간행할 필요를 동시에 느끼고 있다. 또한 1백3명의 순교자 이외의 다른 순교자들에 대한 전기를 작성하는 작업도 진행시켜야 할 것이다.
새로이 편찬될 1백3명의 순교자 전기는 졸속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이 순교자 전기는 그 내용이나 표현방법, 제작기술에 있어서 오늘날 한국의 출판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 모든이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순교자 전기의 간행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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