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께서 운명하신 곳이 문경새재의 관문이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신앙대회와 관광지는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수술받으신지도 얼마 되지 않은 때 무리하게 여행하다가 그만 이런 변을 당하신 게 아닌가 라고 생각되기에『신앙대회에 참석하러 오는 이가 왜 하필이면 그런 관광지엘 가셨노!』하며 멋도 모르고 불평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문경관문은 단순한 관광지나 도립공원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우리 신앙인들을 위해서는 옛날 우리선조들이 이 땅을 주님의 말씀으로 밝히기 위해, 혹은 주님의 복음 때문에 피난하기위해 수없이 드나들던 곳이었습니다. 특히 신부님을 위해서는 빠리외방전교회의 선배 신부님께서 왕래하던 곳이었습니다. 이 땅에 오로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던 신부님이 주님의 품안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출발지로는 너무나도 걸맞는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평소에 아끼고 사랑하던 신자들에게 둘러싸여서!
신부님! 고맙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나아가 한 사제로서 끝까지 모두 다 용서해 주시고 용서받으시고 가셨으니 정말 고맙습니다. 더욱이 마지막 순간까지 기쁜 모습을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제의 길은 바로 이런 것인가 봅니다. 끝까지 용서해 주고, 또 끝까지 기쁘게 사는 것 말입니다.
개천절-우리민족을 위해 하늘이 열리고 이 나라가 시작된 날-신부님은 이날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신부님을 위해서는 하늘나라의 문이 열린 날이 되었군요. 이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기뻐하는 그날이 오면 우리들은 신부님께서 하늘나라에 들어가셨음을 아울러 기억하며 기뻐하겠습니다. 신부님의 마지막 임지가 봉화(奉化)였지요. 그 때문에 우리는 신부님을「박봉화 신부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경북땅 봉화가 아니라 하늘나라에 계시니 이 땅의 사람들을 위해 봉화(烽火)를 올려주십시오.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어디가 우리의 최후 목적지인지를 알려주는 봉화를 올려주세요. 이 땅이 주님의 빛으로 새로워지고 복음의 말씀대로 기쁘게 살아가도록 봉화를 높이 들어주세요.
신부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신부님이 떠나가심으로써 우리 교구 내에 빈 본당이 셋으로 늘어났습니다. 신부가 모자라 쩔쩔매는 우리의 처지를 더 딱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신부님! 봉화(烽火)를 들어주십시오. 그래서 사제의 길이 정말 보람되고 기쁜 것임을 알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특히 우리 젊은이들이 보람찬 사제의 길을 택할 수 있도록 그 마음을 움직여 주세요! 신부님께서 젊은이들의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성소의 씨앗이 되시어 풍성한 결실을 얻도록 주님께 기도하여 주세요!
신부님께서 애써 걸어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시던 이곳은 우리나라의 어떤 교구들보다도 어려움이 많은 곳임을 잘 알고 계시지요! 신부님 우리교구를 위해서도 횃불을 들어주세요! 그래서 우리교구가 당면한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이 지역 주민들에게 주님의 기쁜 소식을 마음껏 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세요.
신부님! 모든 것 다 바쳐 일평생 봉사해온 이 나라가 복음의 빛을 받아들일지 2백년이 됩니다. 이 땅이 더더욱 밝아질 수 있도록 더 높이 봉화를 올려주세요.
신부님, 우리는 영결미사를 마치면서 신부님이 평소에 즐겨 부르시던 성가「찬미예수님」을 불렀답니다. 신부님의 일생이 주님께 찬미를 드리는 것이었고, 신부님의 죽음을 통해서도 주님은 찬미 받으심을 알게 해주는 성가였습니다. 신부님! 지금 살아서 이 성가를 부르는 우리들도 언젠가는 죽어서도 신부님과 함께 큰 목소리로「찬미예수님」을 부르고 싶습니다. 신부님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더 큰 믿음으로 서로 의지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더 진실 된 마음으로 봉사할 수 있게 이끌어 주십시오.
주여! 돌아가신 박 신부님과 죽은 모든 이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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