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한국주교회의가 추계총회에서 그리스도왕 대축일의 전 주일을「평신도의 날」로 제정한지도 벌써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하여 우리는 올해에는 제16회 평신도의 날을 맞이한다.
무릇 신도는 축성된 거룩한 하느님 백성의 일원으로서 세례성사로 연유하는 책임과 사명과 그리고 직무를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그들의 신도직이 갖는 중요성에 비추어 우리주교회의는 성교회와 더불어 그 백성의 각성을 촉구하며 책임수행을 바라는 마음에서 평신도의 날을 제정했을 것이다. 단지 형식적인 교회적 행사나 2차 헌금을 위해서가 아니었을 것이기에 말이다.
사람들과의 연대(連帶)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 신자인 일반신도로서 자기 신앙과 함께 하지 않는 사람과 자기를 구별하는 특성은 무엇인가?
그 특성은 무엇에 의하여 성립되는가? 어떻게 그것을 변명하는가?
이러한 물음은 요컨대 도대체 그리스도 신자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도전적 성격을 띠고 있는 이 의문에 우리는 필히 대답하여야 한다.
지금 우리는 한국교회 2백주년을 맞기 위하여 정신운동, 기념사업, 문화행사, 사목회의, 교황성하의 내한, 103위의 시성 등 참으로 다양하고도 좋은 행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더욱이 신앙의 쇄신을 기하기 위하여 기념축제의 내실화를 외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민족사에 무슨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 또 그러한 것들을 통하여 이 땅의 그리스도 신자라는 것은 민족에 어떤 소용이 있는가?
우리의 조국은 격동의 시대에 직면하여 국내외적으로 긴박하고도 심각한 정세 하에 놓여 있다. 북한 공산주의 집단의 전략 전술은 날이 갈수록 무력화하여 긴장만을 고조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북분단은 더욱 더 굳어만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일제하 36년과 아울러 해방 후 38년의 민족의 비극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우리는 무엇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한편 우리의 사회구조는 정의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불신풍조가 충만하여 정의사회 구현을 위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활동이 지금만큼 긴요한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절망의 시각이 아닌 희망의 미래를 내다보려는 입장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한국천주교회의 평신도는 다름 아닌 이 땅에 사는 백성이며 민족의 역사적 현실 한복판에서 신앙의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영위하고 있는 민족의 일원인 것이다. 따라서 민족사의 현실과 신앙을 조화시켜 역사의 현장, 삶의 자리에서 신앙화를 이루고 그 신앙의 책임을 통감하며 완수하여야 할 것이다.
직업적 가족적 문화적 생활의 여러 현실의 한복판에 신앙을 투입시켜 신앙에 그 신뢰성과 복음적 활력을 주어야 한다.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며 복음이 인간을, 민족을, 인류를 구원에로 이르게 하는 하느님의 능력이라고 절대 신뢰하는 것이다.
복음을 私有化하고 나 개인의 구원만을, 자기 가정만을 생각할 때 이 땅에 빛을 던질 그리스도의 복음은 조직된 교회집단으로 말미암아 非福音化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복음의 요구에 충실함으로써 사회 안에서 예수의 삶을 오늘의 자기 삶으로 하는 일이야말로 인간조건의 제 현실을 인식하여 그 생활의 약함과 가난함에서 하느님을 의미 있게 하는 그리스도의 진리에 참가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실로 한국사회 안에서의 그리스도를 믿는 신도의 현존과 참가양태는 다양하지만 그 현존의 의지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표명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에 대하여 현존하는 것이다.
우리 신도들이 이 땅에서 복음적 동일성 속에서 자기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예수의 메시지를 행동으로 실천하여 사회건설에 참가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도교 윤리는 오늘날 우리의 사회제도 경제기구 정치기관 학교 등 구성된 모든 것에 대하여 철저한 도전을 부르고 있다.
평신도의 날에 즈음하여 우리도 현대 한국이 부과하는 새로운 조건가운데서 교회내의 보호감독으로부터 탈출하여 성교회가 그 사명을 수행해가기 위한 새로운 현존의 방식을 스스로 찾아야 하겠다. 그리하여 복음 그 자체의 이름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로잡고 새로운 시대를 열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편 또한 교회내에서 일반신도의 책임과 경험을 찾고 봉사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신도의 직무를 확립하여야 하겠다. 신도의 직무는 일반신도에게 주어지는 직무라는 말로 인해 야기되는 태도유보가 어떤 것이든 간에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 현실에는 풍부한 봉사의 다양성과 그 혁신의 약속 안에 나타날 것이다.
한국교회 2백주년을 맞으려는 교회는 일반신도에게 책임을 맡기고 카리스마를 인정하고 그들의 직무를 확인하고 봉사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하며 교육하는 노력을 계속하여야할 것이다. 그러면 일반신도가 교회 내에서 직무를 집행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가 출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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