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일 오후 4시 상주 바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교구신앙대회가 차분히 끝나고 오후 5시 반 우리들은 예정된 기차를 탔다. 같은 믿음의 잔치인 신앙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주최 측에 찬사를 보내며 한 믿음으로 큰 모임을 가질 수 있었던 기쁨과 신앙대회의 열기를 서로 나눠가지고 달리는 기차와 함께 각자의 삶의 자리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오후 7시 반 벌써 깔려진 어둠속에 기차가 역에 도착하자 우리는 내렸다.
그때였다. 누군가 와서『신부님 사제관에 도둑이 들었답니다. 빨리 가보세요!』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소름이 쫙 끼친다. 도둑? 얼마나 털어갔을까?
허나 도둑은 이미 들어온 도둑이니 신자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봐야겠다 싶어 좀 더 남았다가 나머지 뒷일은 맡기고 성당으로 향했다. 처음 당해보는 도난이고 보니 우선 기분은 그냥 얼떨떨하다.
벌써 연락을 받고는 경찰관들이 와 있단다. 수녀원도 털렸고 사제관은 유리창을 깨고 들어와 복도문 윗창을 깨고 내 방 문 위의 유리창문도 부수고 들어갔단다. 혼란스런 책상 깨진 유리조각과 창문틀 열려진 옷장… 집안이 이쯤 되었으니 틀림없이 모두 다 잃어 버렸겠거니 싶다. 흥분 때문일까? 무엇을 도난당했는지 단번에 파악할 수가 없다.
『없어진 것들을 자세히 살펴봐주십시오!』한 경찰관이 부탁한다. 책상위에 두었던 라디오와 시계가 보이지 않고, 서랍속의 현금봉투가 비어있다. 옷장 속에든 가방과 술 한 병, 그리고 걸어둔 잠바 하나와 바지 두개가 사라졌다. 만년필과 전자계산기도 없어졌다. 미처 예금하지 못해 침대 밑에 넣어두었던 어제 주일헌금과 교무금은? 방바닥에 엎드려보니 헌금바구니는 얌전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는가. 그뿐 아니라 사진기도 무사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을 이럴 때 사용해도 되는지? 하여튼 공금이 무사했다니 여간 기쁘지 않았다.
만일 도둑(들)이 겸손하게 엎드려 보았더라면 더 많은 수익(?)을 올렸을 텐데…나는 덕분에 더 볼 수 있었던 손해를 면하게 되어 어느 정도 위로가 된다.
『이거 뭐라 말씀드려야 할까요, 면목 없습니다. 우리 관내에서 더욱이 신성한 성당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요. 더더욱 하필이면 교황대사께서 방문하신 날 이런 불상사가 났으니…』난처해하는 경찰책임자의 말이다. 잃어버린 것-억울했다. 그러나 내 영역이 침해당했다는 사실은 정말 기분 나쁜 일이다. 허나 어찌하랴. 『뭐 꼭 필요한 사람이 가져갔겠지요. 유익하게 쓴다면 다행이겠습니다』라고 대답은 했으나 씁쓸한 마음은 금할 수가 없다.
더구나 아침에 교황대사님이 본당방문을 마치고 떠나가시면서 집을 강복하셨는데, 그 강복효과(?)가 도둑도 막지 못할 정도로 허약한 것이었구나 라고 생각되니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대강 정돈을 하고 잠을 청했다. 화요일-본당에서 아침미사가 있는 날이다. 어제의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미사 드리러갔다. 10월 4일, 이날은 거지왕초성인이신「아씨시」의 성프란치스꼬 축일이었다. 이분은 하나도 가진게 없어 거지가 된 것이 아니라, 가졌던 모든 것을 없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물질에서 해방되어 참된 자유를 누리려고 스스로 가난을 택한 성인이었다. 미사를 지내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제의 사건이 우연한 것은 아니었다고 여겨진다. 아마도 내가 가진 것을 없는 사람들과 좀처럼 나누지 않으니까 나눠야 한다는 것을 어제의 도둑(들)이 가르쳐 준 것이고, 나의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얽어매고 있던 물질들에서 해방(강제로라도!) 시켜주려고 일어난 일이 아닌가싶다.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해방될 때 더 큰 평화를 누릴 수 있으니까! 이렇게 보니 오히려 교황대사님의 강복이 십분 효과를 발휘했다고 말해야할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귀한 것을 깨닫게 해준 어제의 도둑(들)을 도둑놈이 아니라 도둑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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