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은 이야기이다.
어떤 본당신부의 영명축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예년같으면 식사준비다, 선물준비다, 손님을 청한다, 축하식준비다 하며 바쁘게 움직일텐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 해는 무척 조용하였다. 신자들이 잊어버린 것일까?
기다리다 못한 본당신부는 미사 후 공지사항 때에 이르기를 아무날은 나의 영명축일인데 그날 아무것도 하지 말고, 선물준비도 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단다. 말은 하지말라 였으나, 그 뜻은 어서 빨리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단다. 물론 농담으로 한 이야기이다.
얼마 전 나의 영명축일을 며칠 앞두었을 때, 신자들의 움직임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었다. 내 보는 앞에서 자신들이 서로 귓속말로 주고 받고있길레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비밀이란다. 그 때 속으로 이는 틀림없이 영명축일 때문에 그러하리라는 짐작이 갔고, 금년에도 그 곤욕(?)을 치러야하나 생각되니 마음이 착잡했다.
사목생활의 첫 임지인 이곳에서 몇 달 모자라는 삼년을 보내고있다. 그사이 첫번째 맞이한 영명축일 때에는 신자들과 기쁨을 나눠야겠다는 생각에 축하식도 받고 주는 선물도 성큼 받았다. 그러고나니 그 축하식에 모든 신자가 다같이 참여하지 않는게 마음에 걸렸다.
작년 영명축일 때도 역시 많은 선물과 축하를 받았다. 그러나 내 기분은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전해에 비해 선물이 적었다거나 축하객이 적어서가 결코 아니라, 우리 신자들에게 괜히 부담만 준 것 같으며 내 자신이 그만한 축하와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아 신부님, 원님 덕택에 나팔 좀 붑시다!』어떤 신자가 말한다. 영명축일 같은 때 신자들이 함께 모여 먹고 마시며 기쁨을 나눌 수 있게 해달라는 뜻이리라.
그러나 주교님의 명령을 받고 임지에온 신부들이 나누고자하는 기쁨은 어떤 것일까? 신부들은 어디에서 기쁨을 얻으며 살고있을까?
그것은 바로 우리 신자들이 하느님의 복음 때문에 어려운 세상이지만 기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것, 하느님의 말씀때문에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가진 것을 가지지못한 사람들과 아낌없이 나누는 것을 보는데서이다. 기쁨뿐 아니라 위로와 용기도 얻는다. 신자들의 좋은 생활을 보고 많은 미신자들이 하느님을 알고 교회의 문을 두드리게 될 때 신부는 피곤도 잊고 더 많은 것을 희생으로 바칠 수 있으리라!
바람과는 달리 실제상황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날로 늘어만 가는 냉담자숫자와 줄어만가고 있는 예비자숫자, 조그마한 이유가 닿기만해도 쉽게 주일미사에 빠지는 신자,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를 해방시켜주는 기쁜소식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의 자유를 얽어매는 무거운 짐으로 여기며 사는것 등 이 모든것은 이곳에서 봉사해야하는 나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데서 일어난 결과로 여겨지기에 마음이 편치않다. 때문에 영명축일이 다가오는게 탐탁치 않았다.
그래서 나도 미사때 알렸다.『영명축일이 며칠인데 그날 아무준비도 하지 마십시오. 축하식도 없을 것이고…선물준비도 하지 마세요!』라고.
헌데 신자들이 어떻게 알아들은 것일까?! 그날 점심때는 푸짐한 잔치상이 차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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