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죽음을 벗어나서 생명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I요한3ㆍ14)
다시 한해를 보내면서 가난한 이웃들과 얼마나 서로 사랑하며 정성을 나누어 왔던가를 성찰해 본다.
마태오 복음서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사랑이 동질의 것임을(마태오 22ㆍ38~39) 역설하고 인간이 받을 최후의 심판이 바로 이웃사랑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 인간상호간의 사랑이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성화된 가르침은 새로운「사랑의 계명」의 신비이며 그리스도적 사랑의 특성이요「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존엄성의 과시요 체험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웃사랑은 이제 하나의 이상적 가치덕목이거나 이론이 아니라 실천 규범이며 크리스찬의 존재양식인 것이다.
크리스찬의 과제는 이러한 이웃사랑의 논증이 아니라 실천에 있으며 그 실천을 통해 끊임없는 새 국면의 가치와 기쁨을 체험해 가야할 것으로 안다.
「착한 사마리아」사람의 비유에서 도둑을 만나 가진바 모든 것을 빼앗기고 상처를 입은채 쓰러져있는 나그네의 이웃이 그를 보고도 못본체하고 지나쳐 버린 제사장도 레위사람도 아니었고 그에게 사랑을 베푼 사마리아 사람이었다면, 지금 나의 이웃은 내가 사랑을 베풀어야 하고 내가 도움과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 즉 내가 못본척 하지말아야 할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만약 누구든지 지금『내가 꼭 도와주어야 할 사람은 없다』라든가『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아야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차가운 마음을 가진 불행한 사람이다.
그것은 그가 그의 이웃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뿐 아니라 그보다 더 큰 불행은 그는 마침내 그리스도를 대접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주께서는『…분명히 말하지만 이사람들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주지 않는것이 곧 내게 해주지 않은것』(마태오 25ㆍ41~45)이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이 세상에는 아무리 부자라도 모자라는 것이 전혀없는 사람이 없고 아무리 가난해도 나누어 줄것이 전혀없는 사람은 없다.
내게 두벌 옷이 있다면 내게 당장 먹을 양식이 있다면 나도 그것을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고 그나마도 없다면 적어도 부드럽고 따뜻한 이해와 수용의 미소와 친절만은 갖고있지 않는가!
우리 본당에, 우리 마을에, 나의 근무처에 내가 알고있는 어떤 단체에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나의 이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들안에 있는 주님을 찾지 못하는것이 된다.우리중에 누가 주님의 부르심과 주님의 청을 외면할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주님은 지금 저 고통받고있는 사람들, 헐벗고 굶주리며 차갑게 잊혀져가는 그 사람들속에서 나의 사랑의 나눔을 기다리고 계신다.
사랑은 동정이 아니며 사랑은 자기과시도 자기 합리화도 아니다. 더욱이 참사랑은 한때의 기분이나 열정일수도 없다. 우리가 크리스찬의 존재양식으로 나누는 사랑은 삶 그 자체며 생활양식 그 자체이기에 우리의 이웃사랑이 한때의 동정이나 자기과시로 오히려 이웃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잘못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이웃사랑이 타성화 되거나, 남은것을 나누며 그런대로 안주하는 형식적 방법이나 연중행사처럼 연말에나 한번씩 행하는 행사처럼 되어서도 곤란하다.
내 온정성과 마음을 다해 주를 섬기듯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예외가 있거나 한계가 있는것이 아니기에 나의 삶과 생명을 나누듯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 2백주년을 살고있는 우리는 특히 한국 초대교회의 교우촌에서 사랑의 공동체 생활을 모범삼아 이시대를 조명하며 스스로를 성찰하고 있다.
한국 초대교회는 박해의 시련속에서 생명을 잃어가면서 또 고난을 피해 심산유곡에 교우촌을 형성하는 극심한 가난속에서도 영해원, 시혜원을 운영하여 고아와 병자를 위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데 소흘함이 없었다.
이러한 전통위에 지금도 교회는 출혈을 무릅쓰고 구라사업 고아와 노약자를 위한 사업 의료사업 재활원사업 등을 행하고 있다. 교회의 이러한 사업을 운영하기 위한 후원 단체에는 이제 신앙인이 아닌 일반사회 인사와 종파를 초월한 참여자들도 적지 않다. 인성회등은 바로 우리가 아름답게 봉헌할수 있는 사랑을 초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그리스도적 사랑을 형제들과 함께 나눌수있음은 참으로 고맙고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를 한다면 남보다 나을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산상수훈중)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를 위해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합니다…사랑하는 자녀를 우리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I 요한 3ㆍ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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