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티 고갯마루에 기우는 해 등지고
포승에 엮여 묵묵히 끌려온 양떼
지나온 길 잊을까 뒤돌아보며
해미성 관문으로 떠밀려 들 때
따라온 구름이 눈물 뿌린다
주시는대로 받고 말씀대로 조용히
작고 낮게 보잘 것 없이 살면서 그저
목자따라 생명의 샘 찾아 마신 것 밖에
이름하여 천주학 죄인 올가미 씌워
저승사자 따라 서문으로 나간다
호야나무 가지에 철사로 머리채 묶어
주렁주렁 매달고 방송이 털 듯
마구치는 방망이에 틔는 피
잎새마다 배인다.
서문밖 돌다리 위에 보릿단 타작인 듯
자리개질에 찢어진 살점
낱알 되어 사방에 흩어지며
굴비 엮듯 한두름 엮어 돌도마에
눕혀 놓고
대들보 돌기둥 떨어뜨려
일타병살에 흐르는 피 내를 이루네.
해미성 성곽 쌓듯 차곡차곡 눕히고 세워
흙덩이 퍼부어 생매장 하니
시신조차 거둘길 없어라
건너편 여수골 냇물에 던져진 동아리
잠기며 눈뜨고 부르는 소리
『예수 마리아님』『예수 마리아님』
살인마의 능지처참이 이보다 더하리
아 처참한 사연 쉬 피할 수도 있으련만
온갖 수모 그 고통 기쁘게 받으니
오직 당신의 행적따라 디디는 자국마다
복음의 씨를 뿌린
기록도 없는 산천의 넋
피로써 신앙을 증거한 가난한 이들
온땅에 진리의 빛 발하는 광채
고이 안고 우리가 분발하리라
- 해미 성지순례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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