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2백주년을 맞이하는 새해 아침이다. 2백주년이란 민족사에서 보면 우리 겨레가 최초로서 양과 만남을 기리는 일이요, 교회사에서 보면 이땅에 구원이 빛이 비침을 감사하고 기념하는 일이니 따지고보면 이건 정년 교회 혼자서만 기념할 일이 아니라 민족전체가 기념해야 할일인 것같다. 겨레와 더불어 영욕의 역사에 동참해온 천주교회가 이 민족에게 지니는 의의는 과연 무엇이며 민족의 앞날에 과연 어떠한 의미를 지녀야 할것인가를 따져봄은 결코 교회 혼자만의 일이 아니지 않을까
아뭏든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겐 2백주년을 기념할수 있는것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은총이 아닐수 없다. 돌이켜보면 1백주년은 교회가 아직도 박해 받던 중에 맞았으니 당시의 신자들은 별달리 기념할 엄두도 못내었을테이고 1백50주년은 일제 치하에서 맞았으니 당시의 신자들은 제대로 기념할 여유가 없었을터이니 2백주년이야 말로 우리민족이 종교의 자유와 독립을 얻은 후에 처음 맞는 역사적 사건이 아닌가? 이제는 교회가 박해를 받는것도 아니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순전히 우리 힘만으로 2백주년을 기념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커다란 은총인가?
그러나 은총이 크면 클 수록 이에 보답해야 할 책임도 커지는법. 과연 우리는 이토록 커다란 은총에 알맞은 보답을 할 만큼 제대로 2백주년을 맞이하고 있는가? 2백주년 하면 우선 교황님의 방문을 연상하고 있는 것이 고작이 아닌가? 교황님을 모시고 여의도에서 신앙대회를 장엄하게 치를 기대에 부풀어 있는 것이 고작이 아닌가? 게다가 교황님을 모시고 여의도에서 신앙대회도 갖고 시성식도 갖게 되면 모든 신자들이 하늘만 쳐다보며「이제나 저제나」하며 기다릴 것 같기만 하여 은근히 걱정이다. 조선교구 설정 1백50주년 때에 주님께서 십자가의 모습을 보여 주셨으니 2백주년인데 뭔가 안보여 주실 수 있겠느냐, 그때에는 보지 못했지만 이번에야 놓칠 수 없지 않느냐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고 있을 사람이 아무래도 적지 않을 것만 같다.
정작 십자가의 의미는 생각도 해보지 않고 그저『하늘의 기적만을 요구』(마르꼬 8ㆍ11~13) 한다면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다를 게 무얼까? 2천년 교회사에서 그 숱한 기적을 보고도, 아니 우리 교회의 2백년 순교사를 보고도 무엇이 부족하여 하늘의 징표를 내 눈으로 꼭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리겠다는 듯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우리의 모습을 주님께서는 어떻게 보실까?
조선교구설정 1백50주년 때만하더라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몰골이 얼마나 가련하고 답답하셨으면 십자가를 보여 주셨을까? 여의도 신앙대회장에 모인 신자들에게 나타난 십자가는 어쩌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정신차려 당신께 무언가 보여 달라고 우리에게 무언가 먼저 보여주신것이 아닐까? 그건 2백주년을 참되게 준비하라는 주님의 초대는 아니었을까?
2백주년을 맞는 한국 사람들아『왜 너희는 여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사도행전 211)
3백주년을 맞으하면서 우리 교회는 이 땅에 빛이 되기 위해 정말로 할일이 많다.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수 없다. 겨레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1백주년의 신자들이 순교의 열정을 보여주고, 1백50주년의 신자들이 기도의 신앙을 보여 주었다면, 2백주년 신자들은 무엇을 후대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 땅의 모든 하느님백성이, 너나 할 것 없이, 성직자, 수도자, 편신도 할 것 없이 이제까지 걸어온 교회의 역사를 허심탄회하게 성찰ㆍ반성하고 미래의 교회상을 함께 계획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의 쇄신의 힘을 후대에게 보여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새해 아침을 맞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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