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 신부님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을 모셔와 진해로 출발하려는 순간 다시 가망이 없다는 전화를 받았을때 이미 부모님은 눈치를 채셨던것 같았습니다.
전주에서 진해까지의 길은 왜 그리도 멀게 느껴졌는지요. 『제발, 제발…』『설마, 설마』하면서 가는 길이었고 부모님께서 받으실 충격을 어떻게 완화시켜드려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걱정만 앞서는 길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진해에 도착했을때는 캄캄하고 추운 겨울 밤이었읍니다.
이미 마산교구의 신부님들과 함께살던 통제부의 김 신부님이 최선을 다하여 모든 준비를 다해드린뒤여서 부모님과 함께 우리는 그대의 임종만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읍니다.
그대의 시신을 모시고 진해 해군성당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하루가 지난 새벽 3시었고 많은 신자들의 흐느낌속에서 미사와 연도를 바치고 밤샘을 하였읍니다.
그동안의 부모님의 모습은 그대가 이미 천국에서 지켜보았을 터이지만 신앙과 육정의 갈림길을 오가는 것이었읍니다. 부모님을 지켜보면서 부모님보다 먼저 길을 떠난다는것이 얼마나 큰불효인지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수 없었읍니다.
지난 6월 1군단의 이치열 신부님이 그대처럼 우리를 남겨 두고 떠났을때 그대 역시 마음 속으로 부모님보다 먼저 가는 불효를 범해서는 절대 안되겠다는 결심을 했을 테인데 왜 알면서도 먼저 간단 말입니까?
사람들은 그들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웃음을 이야기했읍니다. 그런데 공군 권 신부는 詞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읍니다.
언젠가 그대와 함께 차를 몰고 가다가『성진아 우리가 군종신부로 뛴지도 3년이 되었구나. 그동안 고생 많았지?』하는 권 신부의 말에 그대는 대답대신 조용히 눈물을 흘렸고 둘이서 오랫동안 말없이 눈물만 흘렸었다고.
하느님 앞에서는 울고 사람들 앞에서는 웃는 것이 사제의 길이라면 그것은 분명 하느님 앞에서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한달전 전주교구 군종후원회 임원들과 함께 그대를 찾아갔을때 동분서주하면서도 보여주던 그 웃음, 며칠전 휴가때 주교관에서 주교님이랑 여러 신부님들과 주고 받던 그 웃음 뒤에 그처럼 진한 눈물이 숨겨져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대의 소식을 듣고 전주에서 출발하던 그 순간부터 오늘 부모님과 함께 그대 무덤을 다시 찾을 때까지 엉뚱하게 내 머리를 때리는 토막말들은 소위 예수님의 架上七言이었읍니다.
그대도 죽음의 고통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되뇌었을 것입니다.
-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읍니까?
-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요.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읍니다.
-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 목마르다.
- 이제 다 이루었다.
그대의 죽음이 우리를 위한 죽음임을 우리는 깨닫고 있읍니다. 그대의 죽음이 예수님의 죽음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고 있읍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늘 이 세상에서 불러가신 사제 김성진 토마스도 생각하소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게 하소서 이제 편히 쉬십시오』
죄많은 우리를 위해 아버지께 대시니 청하여 용서를 빌어주었으니 우리들은 앞만 보고 열심히 뛰겠읍니다. 그래가 어머니를 우리에게 부탁하였으니 그대 대신 부모님의 아들 노릇을 잘 하겠읍니다. 특별히 어려운 우리 군종신부들을 위해서 이제는 주님 곁에서 끊임없이 전구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983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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