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을 고비를 지금까지 세 번 넘겼다. 첫 번째는 아홉 살 되던 해 지독한 이질에 걸렸을 때인데, 순천의원 원장이셨던 이종대 선생과, 한방 명의로 이름을 날리셨던 이재찬 선생의 헌신적인 치료에 의해서 간신히 죽음을 면했다.
두 번째는 20대 초에서 30대 중반까지 약 15년 동안 폐결핵을 앓던 때다. 이 폐결핵의 간접적인 원인이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철봉을 하다가 늑골을 다쳐 늑막염에 걸렸던 때문이다. 이 늑막염은 일제 말기「성모병원」원장이셨던 박병래 루카 선생의 치료로 나았다.
또 한 차례는 마흔을 조금 지나 치질수술을 받다가 어떻게 잘못되어 패혈증 증세가 병발했을 때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99.9% 위험했었다는 얘기다. 수녀님 두 분이 밤낮 없이 기도를 해주시는 바람에 나를 데려가려던 저승사자도 결국 패퇴(敗退)했다.
요즈음 나는 왼쪽 허벅지 근육이 아파 상당한 고통을 겪고 있다. 이성선(李聖善) 시인 10주기(週忌) 때 갓 나온, 꽤 두툼한 『이성선전집』 두 권을 들고 오느라 좀 무리를 했는데, 그것이 허벅지 통증의 발단이 되었다.
정형외과 전문의가 X레이 사진을 보며 설명하는 바로는 척추협착증, 소위 ‘디스크’의 초기 증상인데 신경의 통로가 가늘어져 뼈가 신경을 압박하는 데서 오는 통증이라는 것이다. 아마 맞는 진단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의사의 말이 진실의 전부는 아니라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사람의 몸 역시 신비의 심연이어서 몸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을 놓고 원리와 체계가 전연 다른, 그리하여 차원이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설명이 아무런 모순 없이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허벅지의 통증 자체가 기기묘묘해서 말로써의 표현이 쉽지 않다.
우선 통증의 위치가 어디라고 꼭 집어서 말하기가 쉽지 않다. 허벅지 전체가 격심하게 뻐근하다. 이 말은 틀림이 없는데 그것이 꼭 허벅지에 국한된 현상만은 아닌 것이다.
아픈 것이 허리 근처 같기도 하고, 왼쪽 고환 같기도 하지만 그것도 아니고, 한밤중 나를 둘러싸고 있는 저 어둠 속 어딘가가 마치 내 몸처럼 아파, 그 아픔이 내게 전달돼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그것이 아니라 내 몸이 아닌 내 영혼 어딘가가 병들어 거기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오는 것 같기도 한 것이다. 세상에 이런 고통도 있는가.
나는 마음 속으로 신음 섞인 소리로 이렇게 외친다. “하느님, 하느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죽을 죄를 졌습니다.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아니, 제게 벌을 내려 주십시오.…” 이때 나의 비굴하고 비참한 꼴은 그야말로 목불인견이어서, 도저히 독자 여러분께 보여드릴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런 꼴을 당하느냐고요? 독자 여러분, 거기까지 알고 싶으십니까. 허나 이것까지 고백할 용기는 제게 없습니다.)
하느님과의 약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헌신짝 버리듯, 요즈음 젊은이들의 용어로 ‘쿨’하게 저버린 죄를 다스리기 위해, 그러니까 하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하느님의 군사인 천사가 지금 내게 와서 내게 알맞은 벌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한 응징을 미루지 않고 즉각 천사들을 보내 벌을 주시는 하느님이 고맙기만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픔 속에서 신음 섞인 소리로, 응답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사람은 살아서 이미 하늘과 교류를 한다. 이번에 이 아픔이 가시면 나는 조금은 달라진 사람이 될 것이다. 내가 겪는 고통의 질(質)이 그렇게 이상야릇한 것도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이러한 실존적인 진실을 의사인들 어떻게 다 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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