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3일 강남 성모병원 마리아홀에서는 「제8회 헌안 및 장기기증자 봉헌의 날」행사가 있었다. 행사장에는 자신의 신체의 일부 또는 전부를 기증하겠다는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없이 붐볏다. 모인 사람들은 뜻밖에도 중년이상의 어른들이 대부분이었고 삶의 마감기에 드어선 노인들이 상당히 많았다. 병원 복도에서 만난 한 노인은 『하느님께 거저 받아서 큰 병 없이 늙도록 잘 썼으니 이제 내가 죽어도 누군가 내 장기를 쓸 수 있다면 오죽이나 좋겠느냐』고 하며 장기기증을 할 수 있게 돼서 뿌듯하다고 했다.
장기기증은 지난 1969년 강남성모병원에서 신장이식 수술에 처음으로 성공한 이후 급속도로 발전해서 지금은 많은 사람의 목숨을 건진 의학계의 쾌거로 알려져 있다. 또한 갑작스런 사고사 등으로 뇌사자들이 늘어감에 따라 장기이식의 기회도 많아졌다. 장기 이식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의 폭이 넓혀진데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등에서 펼치는 장기기증 운동도 한 몫을 크게 해서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사람의 수는 점차 늘고 있는 추세지만 수요에 비해서는 아직도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게다가 올해 2월 9일부터는 장기이식에 관한 새로운 법률이 제정되어 장기이식에 관한 모든 정보를 국립의료원의 한국장기이식정보센터(KONOS)에서 관장하고 배분하게 됐는데, 언뜻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장기의 적절한 배분으로 효율적일 것 같아 보이지만 정부의 이런 개입으로 인해 실은 신자들의 종교적 봉헌 및 헌신의 의미가 상실되고, 이에 따라 종교단체가 주도하는 자발적 동기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강남성모병원 측에서는 이 법률안 시행에 관한 공청회를 개최하고자 김수환 추기경님께 일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말씀 드렸다. 『추기경님, 법률이 이대로 시행된다면 추기경님의 장기가 가톨릭 신자에게 돌아갈지 아니면 무당에게 갈지 알 수 없습니디ㅏ』
추기경님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괜찮다. 죽은 다음에 내 눈이 누구에게 간들 어떻겠냐, 줄 수나 있으면 좋겠다』
이 어른의 짤막한 한 마디는 우리에게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깨달음을 촉구한다. 역시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서부터 우리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해오신 어른다운 말씀이다.
장기이식의 대중화는 교회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이룬 결실임에 틀림없다. 장기이식뿐만 아니라 생명·환경 운동 역시 교회나 민간단체들이 모여 작은 힘을 모으면 아마도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큰 열매를 맺을 것이라 생각한다. 생명문화란 이렇게 작은 힘들이 모여 큰 힘을 발휘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지 정부가 주도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이미 이뤄진 일을 가지고 「감 놔라 대추 놔라」할 일이 아니라 이런 문화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1년8개월에 걸쳐 「환경칼럼」을 집필해주신 박혜순씨께 감사드립니다. 다음호부터는 이동익 신부의 생명칼럼과 전헌호 신부의 환경칼럼이 격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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