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11월 인도의 「봄베이」에서 열린「제3차 인간 발전을 위한 아시아 실업인 대회」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인도대표 한사람의 초대를 받아 그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마침 「봄베이」시의 시경국장 부부도 함께 자리했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이들 부부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임을 알게 되었고 자연히 우리는 화제를 인도와 한국의 교회로 돌려 서로 얘기를 나누게 되었었다.
원래 인도에는 초대 교회시대에 토마 사도가 직접 전교하러 왔었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런데 이들 얘기로는 본격적으로는 포르투갈 사람들이 인도에서 전교를 시작했는데 그들은 세례를 줄 때 세례명과 함께 성(姓)까지도 포르투갈 식으로 바꿔버렸기 때문에 자신들은 조상의 성이 없고 벌써 몇 대째 포르투갈 식 성을 써왔으니 이제 와서 뿌리를 찾으려 해도 어렵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서양식 창씨개명(創氏改名)을 한 셈이니 자신들의 뿌리에 대한 이들의 안타까운 향수를 이해하고도 남을만 했다.
이들의 얘기를 듣는 동안 순전히 자기들의 힘만으로 교회를 세워 가성직제도(假聖職制度)까지 운영했던 우리 선조들의 주체적 신앙심에 저절로 고마운 마음이 들어 이들한테는 좀 미안하기도 했지만 맘껏 자랑을 늘어놓았었다.
우리의 103위 순교 복자들이 성인품에 올라 곧 전 세계에 공포될 것이라는 얘기에 이들은 그저 부러워할 뿐이었다.
이제 우리의 성인들이 전 세계 신자들의 공경을 받을 수 있고, 그 이름은 세례명으로 쓰일 수도 있게 되었으니, 한국은 정녕 「동방의 빛」이라는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의 예언적 싯귀가 그대로 적중함이 아닌가?
이제 우리의 성인들로 말미암아 우리자신은 물론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의 모든 신자들이 가톨릭 교회는 정녕 전 세계적인 교회임을 다시 한번 인식하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 특히 구라파 사람들의 자기들의 신앙, 즉 가톨릭 신앙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은 참으로 유별난 데가 있는 것 같다. 로마 유학 시절 하숙집 할머니와 나눈 얘기가 생각난다.
『당신은 무슨 종교를 믿느냐?』고 묻기에 『가톨릭』이라고 했더니 『아, 우리 것이군요』하는 것이 아닌가. 내심 좀 기가 차기도 하고 좀 언짢기도 하여 『가톨릭이 어떻게 당신들 것입니까! 가톨릭은 문자 그대로 보편적인 교회요, 전 세계인의 것이지요』라고 설명해준 적이 있다.
하지만 인구의 거의 전부가 신자인 구라파 사람들의 입장에 선 『가톨릭은 우리 것, 가장 정통적인 신앙』이라는 자부심이 의식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아니, 그처럼 투철한 신앙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어떤 의미에 선 부럽기조차 하다. 따지고 보면 인도의 초기신자들의 창씨개명도 포르투갈사람들의 이런 자부심이 좀 지나쳐 제 길을 빗나갔기 때문에 일어났던 일이 아니었을까? 이들의 잘못을 나무라기에 앞서 과연 우리는 이들처럼 우리 신앙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나 한지 한번쯤 점검해 볼 필요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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