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사람들의 신앙생활 태도를 보면 본받을 만한 점도 없지 않다는 느낌이 들 때가 적지 않다. 자기들의 율법을、 그 정신을 따르기보다는 문자에 얽매여 그것을 그대로 적용하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아무튼 그것도 자기들 나름대로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보다 철저하게 일상 생활에서 우러나온 것인 만큼 그들의 그러한 자세는 본받지는 못할지언정 나무랄 수 만은 없을 것 같다.
가령 아랍 사람들이 서로 만났을 때 나누는 인사만 해도 참으로 인상적인 데가 있다. 『평화가 당신과 함께!』그들은 이렇게 서로 인사를 주고 받는 것이다.
마치 그 옛날 그리도도께서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타나면서『너희에게 평호가 있기를! 』(루까24ㆍ36)하고 인사하셨듯이 서로 평화를 밀어주는 그들의 인사는 참으로 부럽기조차 하다. 우리는 미사 때에나 나누는 평화의 인사를 그들은 일상 생활에서 언제나 서로 주고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자처하는 우리들이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
사제가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자고 하면 우선 어딘가 모르게 표정이 굳어지기부터 하는 게 아닌가? 무언가 모르게 망설이고 쭈뼛쭈뼛 옆 사람 눈치보기가 일쑤인 우리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가관이 아닐 수 없다. 『혹시 내 인사를 안 받으면 어떡하나?』속으로는 이렇게 걱정하면서『진심으로……』우물우물 넘긴다.
원래「평화가 당신과 함께!」해 야 할 인사를 아마도 우리의 어감으로는「평화」라는 말이「축복」이라는 말보다 덜 친숙해서인지『진심으로 축복합니다』이렇게 바꿔서 하는 것이다.
말이야 어떤 뜻을 지닌 인사든 이 인사를 나눌 때 우리의 마음가짐은 과연 어떠한가? 요컨대 얼마나 진심으로 축복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주고 받는가? 미사 때 아무리 신부님이 형식적 인사가 안되도록 강조해도 형식에 그치고 마는 허전함을 미사 때마다 느끼는 것은 나 혼자 뿐일까?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 안의 한 형제 임을 확인하고 성체를 받아 모시러 나가기에 앞서 나누는 인사의 뒷맛은 항상 무언가 어색하고 씁쓸하기만 함은 나 자신부터 어딘가 모르게 형식적으로 인사를 나누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여 늘 반성하는 마음이다.
더구나 평화의 인사를 서로 나눈 뒤의 우리의 표정、우리의 마음 가짐은 또한 어떠한가? 정말로 마음속으로부터 느끼는가? 저마다 내가 언제 진심으로 축복을 빌어 줬는지 까맣게 잊어버린 채 제대만을 바라보며 주께서 내게 축복을 내려 주시기만을 기원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니 성당에 가면 어딘가 분위기가 냉랭하다는 말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는 전례를 통하여 주님과 대화하고 주님과 더욱 일치하려고는 하지만 정작 주님과 대화하고 이웃과 일치함이 그 전제가 된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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