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어느 본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무더운 여름 어느 주일날 미사가 끝나고 모든 신자들이 성당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 하였다. 미리 우산을 준비해 온 신자들이나 자가용을 타고 온 신자들은 평소 친분이 있던 교우들과 함께 삼삼오오 짝을 지어 불편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미처 우산을 갖고 오지 못한 한 부인이 비가 멎을 때까지 성당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침 성당 안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오던 어느 여인이 우산을 펴 들고 같이 가자고 청하였다. 이들은 곧 친숙해져서 서로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비가 멎기를 기다리던 부인은 실은 자기는 아직 천주교 신자가 아니며、다만 천주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 성당에 나오기 시작한지 벌써 반년이나 되었지만、자기에게 먼저 말을 걸어온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고 감격 어린、그러나 얼마쯤 서운함도 깃든 목소리로 털어 놓았다. 그랬더니 이 말을 다 듣고 난 여인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어머! 어쩌면 저하고 그렇게 똑 같으시죠?』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웃지 못할 일이 과연 우리 본당에는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오늘 날 우리 가톨릭 신자들의 가장 큰 잘못은 너무나도 자주 종교를 자신만의 구원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걱정하신다는 주일복음을 들으면、우리는 곧 고통 중에 있는「나」를 생각하지 이웃이야 염두에도 두지 않는 것이다.
너무나도 자주 우리는 그리스도께서「나」를 구원하시고、성사를 통하여「나」에게 은총을 내려 주시고、영석체를 통하여「나」에게 오시는 걸로만 생각한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이다.
그러나 정작 복음이 우리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은 일상 생활 가운데 우리의 이웃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의 일상생활은 과연 어떠한가? 이웃의 눈에 비친 우리의 생활은 과연 서로 사랑하는 생활인가? 이웃에게 관심을 갖고 이웃과 더불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생활인가? 입으로는「아씨시」의 성프란치스꼬처럼『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는 자 되게 해주소서』이렇게 기도하면서도 실제로 마음 속으로는『위로하기 보다는 위로 받는자되게 해주소서!』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사고방식에 젖어 있으니 이웃의 구원에 대해 제대로 신경을 쓸 겨를이 있을까? 예컨대 서울대교구 사목국이 1982년에 조사한 것만 봐도 신입교우들 중 신자들의 권유를 받아서 입교한 사람은 55%이며 자기 스스로 입교할 결심을 한 사람이 45%나 된다니 이는 결국 백 명 가운데 이웃에게 전교를 한 사람은 약6명에 불과한 셈이니 장한 순교선열들 덕분에 2백 주년을 맞이하는 후예들의 모습치고는 너무나 초라하지 않은가? 이웃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만 구원받으려고 하는 것은 마치『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세 4ㆍ9)라고 하느님께 항변하는 카인의 사고방식과 다를 게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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