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야』 열심히 거울을 들여다 보며 머리염색을 하는 내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편의 느닷없는 말에 어리둘절하게 쳐다보았다.
『당신 하느님이 조금 이상하지 않아?』 점점 모를 소리다. 『내 하느님, 당신 하느님이 어디 계셔요. 우리들 모두의 하느님이지. 그런데 그 하느님이 왜요?』『내 생각으론 아무래도 이상해, 하느님이 연만하셔서 건망증이 생겼다든가 어디 편찮으셔서 정신이 좀 없으시다든가 말이야』」그런 불경스런 말씀드리면 하느님께서 노하셔요.』」아냐, 나야 하느님을 시원치 않게 믿으니 그렇지만 당신같은 열심한 신자가 어째 그러냔 말이야. 얼굴에고 머리에고 맨날 바르고 칠해도 별 수 없이 어째 맨날 그 타령이지. 희어야 할 얼굴은 시커멓고, 검어야 할 머리는 하얗고, 거기다 손을 보면 그게 손이야? 꼭 갈퀴지. 아무래도 당신 하느님이 무엇인가 잘못하시는 것 아냐? 좀 야속스럽지 않아? 아니면 당신이 하느님을 잘못믿고 있다든지…』
빈정대는 그이의 말에 나는 그만 픽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그렇군요. 머리는 공단같이 검고 윤이 흐르고, 얼굴은 백옥같이 희고, 섬섬옥수 은어같은 손가락을 가진 예쁜 여자들도 많은데… 당신한테 정말 미안하군요. 마누라가 아프리카에서 갓 잡혀온 흑인같고, 그뿐인가 마디가 굵은 갈퀴손에 머리를 쳐다보면 백설이 분분한 할마씨같고 그 기분 이해하겠어요. 그러나 지금와서 어떻게 해요. 처음 만났을때 당신이 좋다고 안했으면 피차 지금와서 이런 구구한 소리를 안해도 괜찮을 것을. 할수없이 그냥 사는수밖에요』하고는 남편의 말을 되새기며 웃었다. 희어야 할 얼굴은 검고 검어야 할 머리는 희고 보드랍고 날씬해야 할 손은 투박하고 이것은 분명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 같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나도 여잔데 어째 예쁜것이 좋지않으랴! 깨끗하고 예쁜 얼굴을 대할때마다 검고 예쁘지 못한 얼굴이 무슨 큰죄나 되는듯이 자신이 위축됨은 어쩔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30대 후반부터 머리마저 조금씩 흰머리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요사이는 염색한지 10여일만 지나면 이건 완전 할머니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그것뿐이면 또 괜찮다. 두 손을 바라볼때 마다 느껴지는 환멸은 또 어떻고, 이것은 도무지 여자의 손이랄 수가 없을 만큼 투박하고 뼈마디가 굵고 거칠고… 오- 하느님 저도 여자입니다. 얼굴이 검으면 머리래도 제모습 그냥 두시든가 손이라도 좀 보드랍고 자그맣고 이쁘게 만들어 주시지, 어쩜 이리도 고루고루 복을 주셨을까 하고 중얼거리는 속좁은 원망이 하느님께 대한 두번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려진 속이야 어떻든 겉으로 나타나는 얼굴, 손이 이모양이니 나도 참 딱한 여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거늘 불평을 늘어 놓아봐야 모슨 소용이 있으랴. 그래서 곰곰이 혼자 앉아 주님의 뜻을 생각해 본다. 왜 주님은 나에게 희고 검은 것을 바꿔주시고 갈퀴같은 투박한 손을 주셨을까를… 그러나 그분의 심오한 뜻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모든 것이 부족함없이 꽉 태워진 충족감에서 생겨질 오만과 교만과 불손의 악덕을 덜어주시고 겸손을 배우고 자신을 낮추어 살아가라고 한쪽을 덜 채워주셨을거라는 나름대로의 자위를 해본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부족한 딸에게도 남들보다 크나큰 은총을 한가지 더 주겼다. 내 나이에 비해 아직 돋보기도 안스고 성경글씨를 읽을 수 있다는 것, 얼마나 보배로운 은총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 누구에게만 치우치는 편협한 사랑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고루고루 넘치는 사랑을 나누어 주시는 주님의 넓은 사랑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
주님! 얼굴이 검고 머리가 하야면 어떻습니까? 또 손이 좀 미우면 어떻습니까? 그것으로 만족하라는 주님의 뜻을 따라 그 상애로 열심히 살겠읍니다.
아직 밝음을 주신 이 두눈으로 열심히 읽고 보고 쓰고 당신의 영광을 찬미찬양하겠읍니다. 그러나 다만 당신께 가끔 불경스런 말씀을 그리는 제 남편의 귀와 눈을 번쩍 뜨게 하시어 몸과 마음으로 당신의 참 말씀을 겸손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당신께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하고자 하시면 무엇이나 다 이루시는 주님! 황야에서 헤메는 이 불손한 양을 주님의 뜻으로 당신 품안에 꼭 품어 안아주십시오. 주님의 뜻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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